[평신도 신학강좌] 기독교 윤리란 무엇인가
입력 2011-08-19 18:00
하늘 시민인 동시에 세상 시민
교양 갖춘 성숙한 삶 살아가야
나치시절, 코리 텐 붐과 그의 아버지는 자신들의 가게에 유대인 여성과 그녀의 아이를 몰래 숨겨 두고 있었다. 상황이 점점 더 위급해져 더 안전한 장소로 옮길 필요가 있었다. 마침 그 지방 목사가 그들의 가게에 들어 왔을 때, 코리는 유대인을 집으로 데려갈 수 없느냐고 물었다. 목사는 매몰차게 거절했다. 그러면 유대인 아이만이라도 데려가 달라고 간곡히 부탁했다. “안 돼요. 절대로 안 됩니다. 저 아이 때문에 우리가 목숨을 잃을 수도 있어요.” 목사는 단호했다. 그 순간 코리의 아버지는 아이를 품에 안고 목사를 올려다보며 이렇게 말했다. “당신은 이 아이 때문에 우리가 목숨을 잃을 수도 있다고 말했죠? 나는 그것이 우리 가족이 얻을 수 있는 최대의 영광이라 생각합니다.”
코리 텐 붐 여사가 쓴 책 ‘주는 나의 피난처’에 나오는 이야기의 한 대목이다. 억압받는 유대인을 위해 깊은 이해심을 갖고, 내적 공손함으로 인간에 대한 예의를 지킨 코리 텐 붐 가족이야말로 참된 기독교인의 모습이다. 그들은 하나님이 고통당하는 이웃으로 주신 유대인에게 그리스도의 사랑을 깊고도 고귀한 내적 헌신 속에 몸소 실천했다. 그들이 보여준 태도엔 비정과 무례함이 없다. 따뜻한 인간애가 물씬 배어 있다. 친숙하고도 끈끈한 연줄에 기초한 것이 아닌, 낯선 자들에 대한 온정, 관용과 배려, 희생과 친절 그 자체였다.
오늘의 한국 기독교인의 모습은 시민사회 속에 어떻게 비치고 있는가? 기독교인이 있는 곳에 이웃에 대한 배려가 부족하고 공중도덕과 질서의식을 개의치 않는 소란스러움이 가득하지는 않은지, 너무 사납고 차갑지는 아니한지 곰곰이 돌아볼 일이다. 자기와 다른 견해를 지닌 이웃, 타 종교인과 타 문화 이방인에게 무례하고, 불친절하고, 이기적이고, 적대적이지는 않은지 깊이 반성해 봐야 한다. 시민적 교양을 상실한 기독교인의 일그러진 초상이 혹시 나의 모습은 아닌지 살펴야 한다.
미국 기독교윤리학자 리차드 마우는 그의 책 ‘무례한 기독교’에서 기독교인의 시민적 교양의 중요성을 알리는 시민윤리를 역설했다. 그는 기독교인이 시민사회에서 교양 없이 살아가고 있다고 꼬집는다. 예수 냄새가 안 난다는 것이다. 기독교인은 두 시민권을 가진 존재다. 하늘 시민인 동시에 세상 시민이다. 기독교인은 하늘나라 시민답게 살아가면서 동시에 시민적 교양을 갖춘 성숙한 시민으로 살아갈 책임이 있다. 리차드 마우는 하나님나라 윤리가 시민윤리와 상충되지 않는다고 본다. 그런 의미에서 기독교적 시민윤리는 불가능하지 않다.
시민윤리에서 언급되는 덕목은 인권존중, 공정성, 준법정신, 사회적 책임과 정직성 등이다. 이런 덕목은 성서의 윤리적 가르침과 하나도 배치되지 않는다. 더 나아가 친절, 관용, 배려 같은 시민적 교양은 성숙한 시민만 갖출 덕목이 아니라 성숙한 기독교인도 지녀야 할 필수 덕목이 된다. 기독교인은 시민사회 속에서 예수님이 가르치신 황금률(마 7:12)에 따라 넉넉한 마음으로 실천할 수 있다. 역지사지로써 이웃에게 해를 끼치지 않고 선으로 대하는 것이다. 아가페의 구체적 내용들(고전 13장)에 대한 사회적 적용이기도 하고, 성령의 아홉 가지 열매(갈 5:22)의 사회적 실천이기도 하다. 선한 사마리아인은 오늘을 사는 기독교인이 본받아야 할 대표적 롤 모델이다.
강병오 교수(서울신학대학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