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설교] 길갈에 선 열두 돌
입력 2011-08-19 17:59
여호수아 4장 1~9절
이스라엘 백성들은 요단강을 건넌 후 아주 특별한 명령을 받습니다. 하나님은 지파마다 한 사람씩 열두 명을 선택해 요단강으로 다시 들어가 돌 열두 개를 가져와 길갈에 기념비를 세우게 합니다. “그들에게 명령하여 이르기를 요단 가운데 제사장들의 발이 굳게 선 그곳에서 돌 열둘을 택하여 그것을 가져다가 오늘밤 너희가 유숙할 그곳에 두게 하라 하시니라”(3절) 기념비로 다음 세대에게 하나님의 구원 역사를 기억하며 증언토록 하기 위해서였습니다(7절). 이는 이스라엘 민족의 역사인식을 잘 보여주는 장면입니다. 히브리인들은 하나님께서 조상들로 하여금 요단강을 어떻게 건너게 하셨는가에 대해 상징적으로 교육합니다. 그래서 이들은 유월절에 가족들과 함께 텐트에 머물면서 애굽과 광야에서 고난당하던 아픔의 역사를 잊지 않으려 노력합니다. 이런 역사인식은 이스라엘로 하여금 수천년이 지났음에도 정체성을 잃어버리지 않고 나라를 재건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됐습니다.
역사인식이 없으면 개인이든 국가든 항상 눈앞의 이익만 붙잡으려는 근시안적 사고에 젖을 위험이 커집니다. 총체적인 역사인식을 바탕으로 한 삶의 자세가 국가를 바로 세울 수 있으며, 이러한 교회가 다음 세대에 하나님께서 역사 속에서 이루신 일들을 증언할 수 있습니다.
열두 돌을 강에서 가져와 길갈에 세울 뿐 아니라 여호수아는 강바닥에도 열두 돌을 세우도록 합니다. 강바닥에 묻혀 물에 쓸려갈 것임에도 기념비를 세우라고 한 것은 그 의미 때문입니다. 9절에서 열두 돌을 ‘요단 가운데 곧 언약궤를 멘 제사장들의 발이 선 곳에’ 세우라고 명령하십니다. 언약궤는 죄로 인해 어린양의 죽음이 필요하다는 것을 상징합니다. 이 언약궤가 섰던 곳에 이스라엘 열두 지파를 상징하는 열두 돌을 세우게 합니다. 로마서는 이에 대해 예수 그리스도와 합하여 세례를 받았다고 말합니다(롬 6:2). 세례는 물에 잠기는 예식이며 성도가 옛 삶에 대하여 죽었음을 상징합니다. 성도는 요단강에서 잠김으로 어린양이 피 흘려 죽으신 사건과 함께 죽음을 경험하며 자아와 육적인 정욕도 못 박혀 죽게 됩니다. 옛 삶은 영원히 묻히게 된 것입니다.
이렇게 옛 삶은 장사 지낸 바 되고, 예수 그리스도가 부활하셨듯이 새 사람은 새 삶을 살게 될 길이 열리게 되었습니다. 열두 돌이 길갈에 세워졌는데, 길갈은 ‘수치가 물러갔다’는 의미가 있습니다(수 5:9). 어린양의 죽으심과 함께 옛 삶은 매장되고, 부활의 권세로 모든 죄악의 수치는 물러가 새 역사가 길갈에서부터 시작될 수 있는 것입니다. 고린도전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부활의 첫 열매라고 말합니다(고전 15:20).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따라 맺혀질 생명의 열매가 있음을 약속한 것입니다. 성도는 그리스도와 함께 죽은 것으로 끝이 아닙니다.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부활의 능력으로 새로운 삶과 소망을 가진 자로서 살게 하시려는 은혜의 약속을 받았습니다(롬 6:4). 저주가 물러간 자리가 바로 길갈입니다. 길갈에서부터 이스라엘의 역사가 가나안 땅을 중심으로 새롭게 써졌듯이,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의 자리에서 성도의 삶은 새롭게 세워지고 이어질 것입니다.
송태근 서울 강남교회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