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김의구] 프레아 비히어

입력 2011-08-18 17:41

캄보디아 북부 태국과의 접경지역에는 프레아 비히어(Preah Vihear)라는 전통 사원이 있다. 캄보디아 전성기였던 크메르 제국 당시인 11세기에 건축된 곳으로 525m 높이 낭떠러지 위에 세워져 ‘하늘 위의 사원’이라 불린다. 프레아는 ‘신성한’을, 비히어는 ‘성소’를 뜻한다.

이곳은 캄보디아와 태국 사이 오랜 영유권 분쟁지다. 역사적으로는 캄보디아 유적이지만 가파른 벼랑을 타야 하는 캄보디아보다 태국 쪽 접근이 쉬웠기 때문이다. 1904년 캄보디아를 식민 지배하던 프랑스와 태국의 전신인 시암 왕국은 영토를 획정키로 하고 측량조사를 실시했다. 1907년 완성된 지도에 따라 프레아 비히어는 캄보디아 영토로 인정됐다. 그러나 태국이 34년 측량조사를 다시 한 결과 지도의 오류를 발견했다. 분수계에 따라 국경선을 정하기로 원칙을 세웠는데 이 사원이 양쪽 수계에 모두 다리를 걸치고 있다는 것이었다.

태국은 캄보디아 독립으로 프랑스군이 철수하자 54년 사원을 무력 점령했다. 캄보디아는 59년 국제사법재판소에 제소했고 재판소는 3년 뒤 캄보디아 손을 들어줬다. 1907년 지도에 태국측이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는 이유였다. 캄보디아는 이듬해 이 사원에서 대대적인 행사를 갖고 자국 영토임을 공식화했다. 노로돔 시아누크 국왕은 1시간 이상 절벽길을 올라 이곳을 찾았다.

캄보디아는 2006년 사원을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신청했다. 사원에 인접한 분쟁지역까지 신청대상에 포함돼 있다며 태국이 반발했다. 일단 사원만 등재키로 합의가 이뤄졌지만 해묵은 분쟁은 양국 군의 대치상황으로 비화됐다. 지난 2월에는 무력충돌로 인명피해까지 발생했다. 태국의 영유권 주장은 선거 같은 정치적 전환기에 극심해진다. 일본 정치권을 닮았다. 서세동점 시기 동남아 유일의 독립국이던 태국이 식민지배에서 갓 헤어난 국가를 향해 영유권 주장의 비수를 꽂는 것도 닮은꼴이다.

캄보디아의 한 주부가 지난 6월 한 달간 현지 신문에 ‘독도는 한국 땅, 프레아 비히어는 캄보디아 땅’이라는 전면광고를 게재한 사실이 최근 국내에 보도됐다. 10년 전 한국인과 결혼해 조만간 귀화할 예정인 이 여성은 10살 된 딸에게 부모 나라의 역사를 알려주고 싶었다고 한다. 광고비 3960달러는 딸의 대학등록금을 위해 모으던 것이다. 뒤늦게 이런 사연을 알게 된 신문사는 광고비 전액을 돌려주겠다는 의사를 전했다. 뜻이 참으로 갸륵하고 장하다.

김의구 논설위원 eg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