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실핏줄 그곳에서 자연과 숨쉰다… 전남 무안 탄도만 갯길

입력 2011-08-17 17:39


갯길은 ‘생명의 땅’ 갯벌을 보듬은 실핏줄이다. 바닷가 사람들은 갯벌과 마을, 마을과 마을을 이어주는 그 실핏줄을 통해 자연과 소통해왔다. 회색빛 바닷물이 밀려오면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가 썰물 때 끊어질 듯 가느다란 생명줄로 다시 태어나는 갯길. 그곳에서 만나는 비릿한 갯내음과 조개 캐는 아낙들의 한숨 섞인 노동요는 갯벌이 살아있다는 증거다. 전남 무안의 탄도만 갯길은 현경면의 홀통해변에서 여정을 시작한다. 무안 갯벌낙지의 보고인 탄도만은 운남면, 망운면, 현경면, 해제면, 지도읍에 둘러싸인 넓은 만(灣)으로 2008년 람사르 습지로 등록된 데 이어 전국 최초의 갯벌도립공원으로 지정된 생명의 땅. 탄도만 갯길은 송정리∼목서리∼송현리를 거쳐 망운면 조금나루까지 포구가 아름다운 리아스식 해안을 따라 18.5㎞나 이어진다.

홀통은 호리병처럼 삐죽하게 튀어 나온 땅이라고 해서 붙여진 이름으로 울창한 해송숲과 긴 백사장이 장관을 이룬다. 수심이 낮고 파도가 잔잔해 최근에는 윈드서핑 등 해양레포츠의 요람으로 각광을 받고 있다. 바다 한가운데에 점점이 떠있는 집들은 강태공들을 위한 바다낚시 좌대.

해넘이가 아름다운 홀통해변은 바닷물이 빠지면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드넓은 갯벌이 드러난다. 대바구니를 짊어진 촌로들은 회색빛 갯벌에서 삽으로 땅을 파헤쳐 낙지를 잡고, 아낙들은 밭을 매듯 갯벌에 쪼그려 앉아 호미로 바지락 등 조개를 캐다 보면 어느새 바닷물이 밀려온다.

해질녘 작업을 마친 아낙들이 바지락이 가득 든 플라스틱 통을 들거나 머리에 이고 갯고랑을 따라 한 줄로 걷는 모습은 한 편의 서사시이자 한 폭의 풍경화. 탄도(炭島)로 물러났던 바닷물이 회색빛 갯벌을 야금야금 점령해오자 삶의 무게처럼 긴 그림자를 드리운 아낙들의 발걸음이 빨라진다.

해안선을 에두르는 탄도만 갯길은 포장도로와 비포장도로, 방파제길, 제방길, 모랫길, 소나무길, 갯바위길이 어우러져 있어 걷다 보면 물고기를 잡고 보관하는 생소한 도구들을 만나게 된다. 갯벌에 꽂힌 장대에 그물을 치고 밀물 때 그물 속으로 들어온 물고기들이 미로처럼 생긴 어망에 갇히면 썰물 때 걷어내는 ‘듬장’은 이 지역의 독특한 어업 형태. 갯벌에 웅덩이를 판 후 잡은 낙지 등을 임시로 보관하는 해지(海池)도 탄도만 갯길에서 만나는 소득이다.

봉오산 자락이 탄도만과 만나는 갯벌은 고고한 노송 한 그루로 인해 더욱 눈길을 끈다. 불이라도 난 듯 해질녘에 갈대밭이 빨갛게 물들면 가지가 한쪽으로 쏠린 노송이 황금빛 바다를 배경으로 검은 실루엣으로 빛난다.

탄도만 갯길은 망운면 목서리 외덕마을 앞바다에서 물고기가 숨어든다는 어은도(漁隱島)를 만난다. 갯고랑에 그림자를 드리운 어은도를 끼고 이어지는 해안의 바위는 유암포(기름바위). 썰물 때 물이 흘러내리면 모양이 기름처럼 보인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외덕마을 해안길을 거쳐 장재들 방조제를 지나면 ‘기절낙지’ 원조집으로 알려진 ‘오강섬 횟집’이 나온다. 살아있는 낙지를 소금물에 박박 씻어 잠시 기절시킨 뒤 요리하는 기절낙지는 무안 지역 별미. 횟집 앞의 섬은 오강처럼 작다고 해서 명명된 오강섬이다. 수십 척의 낙지잡이배에 둘러싸인 오강섬은 해넘이가 아름다운 곳으로 밀물 때는 바다가 붉게 물들고 썰물 때는 갯벌이 깨진 거울 파편처럼 황홀하게 반짝인다.

송현리의 송현마을에는 오강섬을 향해 뻗어있는 노두(路頭)가 이채롭다. 노두는 갯벌에 놓은 어민들의 작업도로로 바닷물에 잠겼던 노두의 일부가 썰물 때 드러나면서 ‘모세의 기적’을 연출한다.

탄도만 갯길은 조금나루에서 여정을 마무리한다. 조금나루는 조석간만의 차가 가장 작은 조금 때 나룻배가 다녔다고 해서 명명된 섬으로 지금은 송현마을과 방파제로 연결돼 있다. 조금나루는 탄도만 해넘이를 감상하는 명소. 해당화처럼 붉은 해가 탄도만 수평선과 입을 맞추면 갯벌에 올라앉은 수십 척의 어선들이 기나 긴 휴식에 들어간다.

무안=글·사진 박강섭 관광전문기자 kspark@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