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효정의 바둑이야기] 성장통 그리고 세계대회 우승

입력 2011-08-17 17:38


2007년 프로기사 106명을 대상으로 “이창호 이세돌의 뒤를 이을 한국의 차세대 신예기사는 누구일까요?”라는 설문조사를 했다. 당시 강동윤 이영구 김지석 백홍석 등 이미 기전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신예들이 많았다. 하지만 프로들은 예상 밖으로 박정환을 선택했다. 박정환은 2006년 만 13세의 어린 나이로 프로에 데뷔해 주목을 받았지만 당시 7승5패의 성적을 거두고 있을 뿐이었다. 단지 어리다는 이유만으로 차세대 주자를 꼽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하지만 프로들의 눈은 정확했다. 승부사의 날카로운 눈매를 안경 뒤로 숨긴 채 어린 승부사는 서서히 성장했다. 가끔 강자들을 잡으며 이름을 알리더니 ‘2007 엠게임 마스터스 챔피언십’에서 입단 2년 만에 당당히 우승을 차지했다. 제한기전이었지만 강한 선배들을 차례로 꺾고 결승에서는 라이벌 김지석을 2대 1로 제압하며 우승컵을 안았다. 그 후 2009년 4회 원익배 십단전 준결승에서 이창호를 꺾고 결승에서는 백홍석을 2대 0으로 제압하며 메이저기전 첫 우승의 영광을 안았다.

이어 그 해 12월 박카스배 천원전에서 김지석을 3대 0으로 제압하며 타이틀 하나를 더 추가했다. 그리고 2010년 1월 열린 5회 원익배에서 이창호 9단을 결승에서 누르며 십단전 2연패에 성공했다. 어느 정도 예상은 했지만 무서울 정도로 빠른 성장이었다. 그리고 그 성장은 멈추지 않았다. 지난해에는 ‘죽음의 레이스’라고 불렸던 2010 광저우 아시안게임 국가대표 선발전에서 기라성 같은 선배들을 넘어서며 태극마크를 가슴에 달았다. 그리고 남자단체, 혼성페어에서 두 개의 금메달을 획득했다.

박정환의 앞길은 탄탄대로처럼 보였다. 하지만 올봄에 예상치 못한 7연패를 당하며 주변의 눈을 의심케 했다. 누구에게나 슬럼프는 찾아오는 법. 박정환에게는 성장통이라는 단어가 더 어울릴 듯하다. 하지만 이런 시기는 쉽게 벗어나기 어려워 꽤 오랜 시간을 견디며 힘겹게 예전의 자리를 찾기도 한다. 그래서 정상급 기사가 되기 위해서는 이 슬럼프를 어떻게 극복하느냐가 관건이다. 피해갈 수 없는 심판대라고 할까?

그러나 운명은 정해진 것처럼 교묘히 박정환의 손을 잡아줬다. 3월로 예정됐던 후지쓰배가 일본 대지진으로 인해 8월로 연기되자 박정환은 멈추지 않을 것 같던 연패행진을 끊고 12연승을 거두며 결국 후지쓰배 세계대회 우승을 차지했다.

그 짧은 기간 박정환에게는 무슨 일이 있었을까? 무엇을 깨닫고 견뎌낼 수 있었을까? 아니, 이것은 견뎌낸 것이 아니다. 보란 듯이 뛰어 넘어버린 것이다.

<프로 2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