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조미자] 트와일라잇 블루
입력 2011-08-16 17:52
프랑스 오르세 미술관 작품이 한국에 왔다는 소식을 들었다. 빈센트 반 고흐의 작품을 실제로 볼 수 있다는 설렘으로 전시장을 들렀다. 역시 많은 작품 중에서도 반 고흐의 작품 ‘아를의 별이 빛나는 밤에’ 앞에 사람들이 멈춰서 있었다. 비록 그림은 유리 속에 있지만 두텁게 물감을 입힌 붓의 터치감을 느낄 수 있었다. 화보집에서 많이 본 작품인데도 불구하고 나도 그 그림 앞에서 떠날 줄 몰랐다. 어느새 나도 아를 강변에 나와 별이 쏟아지는 하늘과 어두운 강을 바라보고 있었다.
반 고흐의 작품은 캔버스 삼분의 일을 밤하늘이 차지하고 있었다. 강변의 하늘에 떠있는 별들은 마치 터지는 폭죽처럼 빛나고 있었다. 밤하늘의 한가운데에는 북두칠성이 떠있고, 출렁이는 강물에는 마을의 가스등 불빛이 멀리까지 비치고 있다. 조그만 배가 두 척 묶여있는 강변에는 연인 둘이 강을 뒤로 하고 돌아오는 모습이다.
반 고흐는 프랑스 남부 지방의 밤 풍경과 별이 빛나는 하늘을 좋아했다. 머리에 촛불 하나 올려놓고 풍성한 노랑과 오렌지색으로 별이 빛나는 밤을 그려냈다. 고흐가 동생 테오에게 쓴 편지를 보면 그가 얼마나 밤의 풍경에 매료되었는지 알 수 있다. “나는 이 강변에 앉을 때마다 목 밑까지 출렁거리는 별빛의 흐름을 느낀다. 욱신거리는 오른쪽 귀에서는 강물 소리가 들려. 별은 심장처럼 파닥거리며 계속적으로 빛나고, 캔버스에서 별빛 터지는 소리가 들린다.”
고갱과 다투고 나서 잘라낸 한쪽 귀에 들려오는 강물 소리, 별빛 터지는 소리. 한 푼의 돈이 아쉽고, 물감 튜브와 화지가 더 아쉬웠을 텐데. 후대 미술 평론가들은 친구와 연인을 잃은 반 고흐가 정신적 외로움과 북쪽 지방에 대한 향수 때문에 자살을 했다고 한다. 하지만 나는 별을 보며 꿈을 꾼 그만큼 행복한 사람도 없지 않나 생각한다.
진정 현대인들은 얼마나 꿈을 꾸며 살아가고 있을까. 아침마다 꿈을 묶듯 넥타이를 매고, 저녁이면 업무의 연속이라는 이유로 전전하는 회식자리. 과연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별을 바라보며 그 별 속에서 위안을, 희망의 속삭임을 들을 수 있을 것인가.
오늘 내 눈과 귀에 보이고 들려오는 것들, 내 의지로 보고 들을 수 있는 것들이 어떤 것들인가 생각해본다. 도로를 가득 메운 차 소리와 고층건물에서 뿜어져 나오는 불빛들로 도시는 밤이면 다시 태어난다. 그 휘황하고 현란한 밤 속에서 별을 찾는 것은 잃어버린 신발을 찾는 것보다 어렵다.
고통스러우면 밤하늘을 보았던 반 고흐. 나는 힘겨우면 고개를 들 생각을 못했다. 고통스러웠던 것들은 저마다 빛을 뿜어내고 있다는 그의 말에 가슴이 환해진다. 고통스러운 것에 색채를 담고, 소리를 넣어, 빛으로 매만져, 희망을 그려냈던 반 고흐. 시공을 뛰어넘어 그를 다시 만난 듯하다.
트와일라잇 블루, 푸른 대기를 뚫고 별 하나가 또 나오고 있어… 내 귀에도 별빛 터지는 소리가 들려올까? 한 줄기 유성이 흐른다. 떠나는 기차의 여운처럼.
조미자 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