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오동진] 육상 대표, 끈질긴 투혼을 보여달라

입력 2011-08-14 17:34


2년 전의 일이다. 당시 2009년 8월 베를린 세계육상선수권대회는 나름 남다른 의미를 가진 대회였다. 2007년 3월 케냐 몸바사에서 세계육상선수권대회 유치에 성공한 가운데 1년반이라는 준비기간을 거친 이후 처음 참가하는 세계육상선수권대회이기도 했고, 1936년 8월 베를린 올림픽에서 일장기를 가슴에 달고 시상대에 올라서야 했던 두 분의 선배 마라토너의 가슴 시린 역사가 간직된 곳이기도 했다. 우리 국민들에게 육상이라는 스포츠의 이미지를 독립운동으로까지 숭고한 자리로 올려주게 한 곳도 바로 베를린이었다.

대구대회에 국민 관심 쏠려

선수 열아홉 명이 참가하는 가운데 사실 한국 육상이 과거에 메달을 획득한 적도 없고, 그래서 괄목할 만한 성과를 크게 기대하지 않는 분위기였다. 또 많은 사람들이 베를린 대회는 2011년을 위해 배우고 체험하는 기회로 배려해 주었고, 나 역시 성적에 연연하지 않겠다는 의지도 있었다.

그러나 여론은 한국 육상을 질책하기 시작했다. 그 시발점은 바로 대회 현장에서 본 지도자와 선수들의 모습이었다. 세계대회 유치국 선수에게 국민들이 정작 바랐던 것은 무엇이었을까. 성적이 저조하면 씩씩대며 분개하고, “이번에는 못했지만 더 잘 하겠다”는 마음자세를 가진 청년들이었다. 하지만 경보경기장에서, 트랙과 필드경기장에서, 또 마라톤 레이스 현장에서 경기를 마친 선수들의 모습에서 분통하고, 절망하는 선수는 참 보기 힘들었다. 그렇게 만든 지도자의 자질과 능력 역시 크게 폄하됐다.

바로 그 선수들이 1년 뒤인 2010년 11월, 광저우 아시안게임에서는 또 다른 모습을 보여주었다. 1986년 서울 아시안게임 이후 최고의 성적을 만들어 냈고, 그 메달리스트들은 하위 성적을 냈던 2006년 도하 아시안게임에 참가했던 선수들이었다.

물론 그동안 남다른 기량을 다져 왔겠지만, 가장 큰 요인은 강인한 정신력이었다고 생각한다. 무엇보다도 정신력이 달라졌고, 자신의 목표와 비전이 분명했기 때문이었다. 우리는 그곳에서 한국 육상의 가능성과 잠재력을 발견하게 됐다.

그렇게 광저우 아시안게임에서는 잃었던 체면과 자존심을 조금이나마 되살리는 계기가 되었다고 한다면, 오는 27일 개막되는 대구 세계대회는 또 다른 차원의 경연장이다. 국민들이 선수들에게 진정으로 바라는 것은 우리의 자식, 동생 같은 젊은이들이 국가를 대표해서 세계와 당당히 겨루는 불굴의 모습에서 감동과 위안과 희망을 얻고 싶어 하는 것이다.

감동과 희망의 드라마 기대

국민들은 부족하면 질책할 것이고, 가슴에 잔잔한 감동을 준다면 아낌없이 응원을 보낼 것이다. 그래서 젊은이의 패기, 도전정신으로 뭉쳐진 육상국가대표의 얼굴을 보여줬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지금 한국 육상은 세계화에 눈을 뜨는 기로에 서 있다. ‘육상 종목이 국민과 함께하는 한국 체육의 중심으로서 자리 잡게 되는 것’, 바로 우리가 이루어야 할 꿈이자 정신인 것이다.

나는 이번 세계대회에서 외부의 시선을 의식해 무리한 성과를 요구할 생각은 없다. 하지만 열정의 땀과 눈물이 없이 기록이 나오겠는가. 그동안 선수들이 이 자리에 오기까지 땀 흘린 정성을 제대로 보여 줄 수만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그렇게만 된다면 결과가 어떻게 되었든 간에 국민은 그래도 한국 육상이 최선을 다했다. 한국 육상에 미래가 있다고 생각해 줄 것이다.

마지막으로 선수들에게 당부한다.

“성적이 나쁘면 씩씩대고 분에 못 이기는 모습을 보여 달라. 고개 숙이고 기죽지 말라. 당당하게 이야기하고 떳떳한 국가육상대표의 모습을 보여 달라.”

이제 곧 여러분은 역사의 현장으로 달려간다. 모든 모습이 기록되고, 오랫동안 사람들의 입을 통해 이야기될 것이다. 대구스타디움은 어떤 선수, 지도자에게는 꿈을 크게 이루는 계기가 되는 무대가 될 것이다. 시련과 고난을 이겨 나가는 용기를 발휘할 수 있도록 국민들이 따스한 격려와 힘찬 응원을 보내 줄 것이다. 대한민국 젊은이들이 얼마나 강하고 악착같은지, 근성을 전 세계에 보여 줄 차례다. 끈질기고 독한 태극전사로 싸워주기 바란다.

오동진 대한육상경기연맹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