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신창호] 기적과 몰락, 마음의 힘
입력 2011-08-14 21:49
1980년 겨울 미국 레이크플래시드에서 열린 동계올림픽에선 ‘기적’이 일어났다. 아이스하키 2류국 미국팀이 거의 매번 올림픽 우승을 차지했던 소련팀을 꺾은 것이다.
소련 아이스하키팀은 공산주의의 정체성을 대변한다는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다. 선수들은 정교한 기계처럼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상대팀을 이겼다. 소련 정부는 세계1위 아이스하키팀을 “불평등이 만연한 자본주의보다 공산주의 통제 시스템이 우월하다는 것을 그대로 보여준다”며 전폭 지원했다. 20년 이상 구력의 선수 전원이 소련군 장교였다. 반면 미국팀은 “잘 해야 8등”이란 평을 받고 있었다.
미국 감독을 맡은 허브 브룩스는 ‘닳고 닳은’ 프로 선수 대신 아마추어 대학선수로만 팀을 구성했다. 그리고 틈만 나면 이들이게 “인간의 정신이 얼마나 위대한지 이번에 보여주자”고 말했다. 선수들은 모두 자기를 버리고 동료를 위해 희생했다.
대회가 시작되자 미국팀은 차례로 강팀을 꺾고 결승까지 올랐다. 그래도 사람들은 “기적은 여기까지만”이라고 여겼다. 하지만 스무 살을 갓 넘긴 아마추어 선수들은 무적의 소련팀을 이겼다. 금메달을 목에 건 대학생들의 얼굴은 멍한 웃음과 눈물이 범벅이 돼 있었다. 자신들도 스스로 한 일이 믿기지 않았던 모양이다.
이틀 전 ‘골프황제’ 타이거 우즈는 그동안 세 번이나 우승했던 PGA챔피언십에서 2라운드 동안 10오버파를 치고 컷아웃됐다. 일주일 전엔 여섯번 우승을 차지했던 브리지스톤 인비테이셔널에서 30위권 밖의 성적을 냈다. 이보다 한 달 전에는 최경주가 우승했던 플레이어스 챔피언십 1라운드에서 참혹한 성적을 낸 뒤 “무릎이 너무 아파 스윙을 할 수 없다”는 핑계를 대고 기권해버렸다.
2년 전만 해도 이런 일이 벌어질지 어떤 전문가도 예상하지 못했다. 불륜 스캔들과 섹스파티 의혹이 사실로 밝혀진 뒤 그는 아내로부터 이혼을 당했다. 그 뒤로 감히 범접이 불가능할 것 같았던 그의 스윙과 퍼팅 실력은 한없이 무너져 내리고 있다. 엄청난 집중력을 발휘하던 ‘호랑이의 정신’은 갈기갈기 찢겨진 모양새다.
레이크플래시드의 기적과 타이거 우즈의 몰락, 두 스토리는 인간이 위대한 업적을 이루기 위해선 반드시 ‘마음의 힘’을 빌려야 한다는 사실을 잘 보여준다. 부패한 마음으로는 어느 것도 얻을 수가 없다. 반대로 맑고 희생을 두려워하지 않는 정신은 스스로의 기대까지 넘어서는 기적도 만들어낸다.
신창호 차장 proco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