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광형의 ‘문화재 속으로’] (81) 손기정의 그리스 청동투구

입력 2011-08-14 17:25


1936년 8월 9일 독일 베를린올림픽 메인스타디움에는 12만여명의 관중이 2시간 넘게 마라톤 우승자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갈채와 환호 속에 나타난 주인공은 가슴에 일장기를 단 손기정(1912∼2002) 선수였지요. 일본인의 이름으로 우승한 그는 훗날 “상상은 했었지만 내 우승의 표시로 막상 일장기가 올라갈 때는 피가 거꾸로 흐르는 것 같았다”고 회고했습니다.

일장기와 함께 시상대에 섰던 그의 사진을 보고 ‘인간이 표현할 수 있는 가장 슬픈 모습’이라고 했다는 한 독일인의 말처럼 손기정은 비장한 심정으로 월계관을 머리에 쓰고 금메달을 목에 걸었을 겁니다. 그에게 부상으로 주어진 것은 기원전 6세기 고대 그리스 코린트에서 제작된 유물인 청동 투구였답니다. 하지만 이는 곧바로 전달되지 않았습니다.

올림픽 마라톤 우승자에게 그리스가 유물을 주는 관행은 제2회 파리올림픽(1900년)부터 시작됐습니다. 기원전 490년 아테네 마라톤 평원에서 벌어진 페르시아와의 전쟁에서 그리스가 승리한 후 그 소식을 알리기 위해 약 40㎞를 달려온 병사 페이디피데스를 기리기 위한 것이었죠. 그러나 베를린올림픽 당시 ‘메달 외에 어떠한 것도 수여할 수 없다’며 투구를 주지 않았답니다.

뒤늦게 이 사실을 안 손기정은 국내 체육계와 함께 독일을 상대로 끈질긴 협상을 벌여 베를린올림픽 개최 50주년인 1986년에야 투구를 찾아올 수 있었지요. 마침내 반환이 결정됐다는 소식에 어린 아이처럼 상기된 얼굴로 기뻐했던 손기정은 이 투구를 94년 국립중앙박물관에 기증했답니다. 그리고 서구 유물로는 처음으로 보물 제904호로 지정됐습니다.

한국으로 돌아오기 전 50년 동안 베를린 샤로텐부르그 박물관에 전시된 높이 21.5㎝의 이 청동 투구의 설명판에는 ‘그리스 코린트 시대의 투구/마라톤 승자를 위해 아테네의 브라디니 신문사가 제공한 기념상/제11회 베를린올림픽 1936년/손기떼이(손기정의 일본어 표기)/일본/2시간 29분 19초’라고 독일어로 명시돼 있었답니다.

1875년 독일 고고학자에 의해 그리스 올림피아 광장에서 발굴된 이 투구는 완벽한 원형을 유지한 것으로는 비교 대상이 없다는 점에서 가치가 높다고 합니다. 머리와 투구 사이의 완충효과를 위해 헝겊을 안쪽에 덧대고 이를 고정시키기 위해 구멍을 뚫어 못을 박았으며, 앞쪽에는 이 고정 못 바깥으로 점열문과 톱니모양 문양이 2중으로 새겨져 있습니다.

국립대구박물관이 세계육상선수권대회 개최 기념으로 10월 9일까지 ‘나의 조국 나의 마라톤, 마라톤 영웅 손기정’ 특별전을 마련했습니다. 금메달, 우승상장, 월계관과 함께 그리스 투구도 선보인답니다. 일제 치하에서 고통받던 이 땅의 사람들에게 희망을 선물한 손기정의 삶이 광복절을 맞아 더욱 빛나는 것 같습니다. 해외의 육상 스타들도 전시를 둘러보고 감동한다면 금상첨화이겠죠.

이광형 문화생활부 선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