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 폐해 알아보려 게임 속으로… 전직 게임회사 CEO 고평석씨 “게임에 빠진 자녀 이렇게 돌보세요”

입력 2011-08-13 01:11


“자녀가 게임을 그만두길 바란다면 ‘게임 그만하라’는 말은 절대 하지 마십시오. 자녀가 하는 그 게임을 배워서 같이 해보세요.”

이게 무슨 말? 게임회사 최고경영자(CEO)였던 고평석(40)씨의 처방이다. ‘아이들이 선생님의 수업을 귀로 들으면서 손으로는 게임을 하도록 하는 것이 최종 목표’였던 그는 아들을 낳은 뒤 게임 사업을 접었다고 했다. 자녀가 게임을 하지 않길 바라는 부모들의 마음이 가슴에 와 닿았기 때문이다.

고씨는 최근 온라인 게임을 고발하는 책 ‘게임회사가 우리 아이에게 말하지 않는 진실’을 내놓았다. 그는 이 책을 쓰기 위해 ‘게임중독실험’까지 했다. 햄버거 해독 다큐멘터리 영화 ‘슈퍼 사이즈 미’를 찍었던 모건 스펄록처럼 게임의 해독을 알아보기 위해 스스로를 게임의 바다에 내던진 것.

방학이 시작되자마자 컴퓨터에 코 박고 앉아 있는 자녀들. 그 뒤통수를 바라보느라 속이 부글부글 끓고 있을 부모들이 적지 않은 요즘이다. “게임에 빠진 자녀를 둔 부모님들께 꼭 해드리고 싶은 말이 있어 책을 냈다”는 그를 10일 만났다. 그는 게임중독실험부터 게임의 수렁에서 우리 아이를 건져낼 방법까지 조근조근 들려줬다.

-게임중독실험은 어떻게 했나.

“지난해 10월부터 5개월간 했다. 무엇에 빠져 본 적이 없어 중독이 안 될까봐 걱정했지만 기우였다. 축구게임을 했는데, 두 달 뒤 재미를 느끼기 시작했다. 석 달이 지나서는 게임 아이템을 돈을 주고 샀고, 게임 중에는 전화도 안 받을 만큼 푹 빠졌다. 나중에는 근무 중에도 했다.”

-중독됐을 때 상태는.

“게임을 하고 나면 머리가 핑 돌았다. 나도 모르게 뭔가를 발로 차고 싶어졌다. 4개월 때부터는 게임을 하루라도 하지 않으면 몹시 불안했다. 손과 목에 통증이 심해졌다. 하루에 60∼90분밖에 하지 않았는데도 심신이 망가졌다.”



-실험에서 얻은 교훈은.

“실험이 끝난 뒤 게임을 끊기 위해 전쟁을 벌이다시피 했다. 중국어 공부를 시작했고, 신문과 책을 열심히 읽었고, 등산 등 취미생활을 하면서 가까스로 벗어났다. 지금도 가끔 게임의 유혹에 시달린다. 게임은 아예 시작하지 않는 게 상책이다.”

-게임을 전혀 하지 않는 게 가능한가.

“그것이 문제다. 지금 네 살인 내 아들도 아마 게임을 못하게 할 수는 없을 것이다. 상대적으로 좋은 게임을 하도록 도와주려고 한다. 끝없이 이어지는 게임이 아니라 한번에 끝나는 게임, 그래서 중독성이 약한 게임, 스토리가 있는 게임이 그래도 낫다.”

-게임에 왜 그토록 빠질까.

“아이들 어깨에 지워진 무거운 스트레스와 게임 자체가 지닌 중독적 성격 때문이다. 아이들에게는 게임이 혼자만의 세계이자 일종의 탈출구다. 공부는 해도 성적이 쉽게 오르지 않지만 게임은 들인 시간만큼 결과가 나오고 그래서 재미를 느낀다.”

-게임에 빠진 아이들은 어떻게 도와줘야 하나.

“‘게임 그만하라’ ‘게임 그만하고 공부해라’ 이런 말들을 해선 절대 안 된다. 그럴수록 더하고 싶어지는 게 게임이다. 자녀가 즐기는 게임에 관심을 두는 것이 중요하다. 게임을 배워 자녀와 게임에 대해 이야기하고 같이 해보면서 공감대를 형성하는 것이 급선무다. 그 이후 야구 축구 보드게임 등 아이가 좋아할 만한 취미생활을 하도록 이끌어 준다.”

-그렇게 한다고 해서 게임 중독에서 벗어날 수 있겠나.

“계속 게임을 한다면 장기전에 돌입해야 한다. 게임은 이기기 위해 하는 것이 아니라 즐기기 위해 하는 것이라고 수시로 얘기해 감정조절을 도와준다. 또 한 달 예산과 결제 수단을 정해줘 게임을 하면서 돈을 계획적으로 쓸 수 있도록 해준다. 어떤 게임을 얼마큼 했으며, 할 때 느낌은 어땠는지, 돈은 얼마나 썼는지 게임일기를 쓰도록 한다. 이렇게 하면 어느 정도 게임을 계획적으로 할 수 있게 된다. 이런 노력도 허사라면 전문가 도움을 받아야 한다.”

-게임이 두뇌계발 등에 도움이 된다는 주장도 있는데.

“게임이 사회악은 아니다. 하지만 두뇌계발이나 순발력 향상 등은 게임회사에서 내놓는 허구다. 단순 플레이만 반복하는데 머리가 좋아질 리 없다. 게임을 하면 감정조절이 어려워지고 오히려 스트레스가 쌓이게 된다. 게임은 시간 도둑이다.”

-16세 미만 청소년들의 밤 12시 이후 온라인 게임 접속을 제한하는 셧다운제가 도입됐다.

“게임의 사회적 비용을 줄이거나 폐해를 막기에는 역부족이라고 본다. 게임에 대한 각종 임상실험을 하고, 사회적 비용을 정밀하게 연구해 해결책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아이들에겐 게임이 아닌 다른 오락거리가 필요하다. 메이저 게임회사를 상대로 게임세를 거둬 창의적인 놀이방법을 연구했으면 좋겠다.”

글=김혜림 선임기자·사진=최종학 기자 ms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