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춘추-김진홍] 지구는 소중하다

입력 2011-08-11 19:42


서양의 우스갯소리 하나. 두 행성이 우주에서 만났다.

A 행성: “너, 상태가 안 좋아 보인다.”

B 행성: “응, 호모 사피엔스에 감염됐어.”

A 행성: “나도 그런 적이 있었는데, 걱정할 거 없어. 곧 없어질 거야.”

인간 때문에 못 살겠다는 B 행성의 푸념에 A 행성은 인간이 머지않아 큰 벌을 받을 것이라고 말한다. 지구의 위기는 인류의 위기라는 사실을 망각한 채 인간이 계속 지구를 괴롭히고 있다는 의미가 포함돼 있다. 그래서 우스갯소리지만 결코 웃어넘길 수만은 없다.

생뚱맞은 얘기로 들릴지 모르겠다. 하지만 최근 우리나라에서 수십 명의 목숨을 앗아간 폭우→폭염→폭우→폭염→태풍의 이상기후를 떠올리면 결코 느닷없는 건 아니다. 일상으로 굳어져버린 이상기후. 혹자는 이를 ‘새로운 정상(new normal)’이라고 부른다. 비정상이 분명한데 정상이라니 아이러니다.

이상기후는 기후체계가 파괴됐음을 뜻한다. 원인 제공자는 인간이다. 개발과 진보를 명분으로 환경오염 및 파괴, 자원착취, 핵실험 등을 일삼는 바람에 지구는 신음 중이다. 예전에 볼 수 없던 극심한 무더위와 홍수, 태풍, 가뭄은 ‘제발 그만 못 살게 굴라’는 지구의 절규이자 역습인 셈이다.

이상기후 원인제공자는 인간

불볕더위가 기승을 부리는 요즘도 국지성 호우로 전국 곳곳이 난리다. 되돌아보면, 오래 전 우리나라 자연환경을 설명할 때 빠지지 않던 것이 있었다. ‘삼한사온.’ 사흘은 춥고, 나흘은 따뜻한 우리나라만의 겨울 풍경이었다. 정확한 기억은 없지만, 삼한사온이라는 단어가 언제부턴가 슬그머니 사라졌다. 실제로 삼한사온이 우리나라에서 자취를 감춘 것과 함께.

이처럼 우리나라는 지난 80년간 겨울이 지역에 따라 22∼49일 짧아졌다. 여름은 길어졌다. 이렇게 기온이 점차 올라 남부지방은 2020년부터, 우리나라 전체는 2070년부터 아열대기후가 될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 예측이다.

다른 나라들 역시 이상기후다. 작년 17개국의 최저 또는 최고 기온 기록이 깨졌다. 지난 겨울 유례없는 폭설과 한파에 시달렸던 유럽과 북미지역은 겨울이 지나자마자 가뭄과 폭우, 폭염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극한 기후 사이클은 인간에게 고통이다. 지난해 자연재해로 인한 전 세계 난민이 4200만명에 이른다고 한다. 물을 찾아, 또는 물을 피해 이리저리 다녀야 하는 이들이 겪는 육체적·정신적 괴로움은 이루 다 형언하기 어렵다.

거듭 말하지만, 기상재난은 지구를 아프게 하면 대가를 치를 것이라는 경고를 무시해온 대가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이상기후의 강도는 시간이 갈수록 더 가팔라질 전망이다.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물부족과 홍수, 기아 등으로 고초를 당할 것이란 얘기다. 그럼에도 지구야 어찌되든 개개인 혹은 개별국가들은 생존 경쟁에 여념이 없다. ‘설마 내가 살아있는 동안에야’ 또는 ‘걱정도 팔자’라는 안이한 생각도 여전한 듯하다.

현재를 살아가는 이들에게 지구의 위기, 인류의 위기는 먼 미래의 일일 수 있다. 하지만 지구를 치유하는 일을 게을리 한다는 것은 우리 후손들에게 엄청난 죄를 짓는 일이라는 점은 분명하다. 지구엔 탈출구가 없기 때문이다.

지구 치유에 힘 합해야

빙하기라는 대재앙에 직면한 지구 이야기를 담은 영화 ‘투모로우’가 있었다. 그 영화에 “인류는 지구 자원을 마음대로 쓸 권한이 있다고 착각하고 있었다. 그건 오만이었다”는 대사가 나온다. 오만에서 벗어나지 않으면 우리 후손들이 바로 ‘내일’ 가공할 만한 기상재난에 직면할 수도 있다는 것을 일깨워준다. 그 후손들은 21세기를 살았던 우리를 어떻게 평가할까. “정말 무지하고 무책임한 선조들이었다”고 맹비난하지 않을까.

김진홍 논설위원 jh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