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의 시] 침엽수 지대

입력 2011-07-31 18:25

김명수 (1945∼ )

깊은 밤 눈 덮여 고적한 곳에

꼿꼿이 머리를 하늘에 두고

침엽수들이 서 있다

먼 산맥을 이어

내어달리고 싶은 마음이건만

푸르른 정열에 가두어두었다

눈이 내리면 온몸에 흰눈을 이고

바람이 불면 우우 소리를 낸다

일월성신 잦은 계절의 변화에도

잎새조차 변하지 않음은 태고적 고독인가

차운 바람 부는 날에도

나무는 오히려 위엄을 잃지 않는다

그러기에 겨울밤 차가운 별도

침엽수 머리 위에 더욱 반짝인다


맑고 차갑고 투명하다. 밤 깊은 고원지대, 눈 덮여 고적한 곳, 거기 침엽수들이 하늘 아래 꼿꼿이 서 있다. 그런 침엽수가 무엇을 상징하는지를 생각해보게 하는 것만으로도 이 시의 가치는 높다. 시적 대상을 이루는 당대의 어두운 현실 속에서 잠들지 않고 울울창창하게 서 있는 푸르른 것들. 멀리 내달릴 수 있음에도 다만 그 기개를 다스리고 있는 존재의 위엄이 돋보인다.

변하지도 않고 잃지도 않는다. 이렇게 장대한 사람들은 있다. 이 한여름에도 서늘함을 느끼게 하는 인격이다.

임순만 수석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