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시평-서승환] 사회적 합리성과 양극화 해소
입력 2011-07-31 18:23
최후통첩 게임에서는 갑에게 100만원을 주고 을에게 얼마를 줄지 제안하게 한다. 을이 제안을 받아들이면 제안이 실행되지만 거절하면 모두 한푼도 받을 수 없다. 을의 입장에서 보면 어차피 공돈을 받는 것이므로 1원이라도 준다고 하면 제안을 받아들이는 것이 이득이다. 그런데 실제 실험 결과에 의하면 갑이 20만원 이하를 제안한 경우의 절반 정도는 거절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행태경제학은 이를 만족이 금전적인 보상에 의해서만 결정되지 않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이는 곧 사회적 합리성의 확보, 공정성의 유지 등과 같은 건전한 사회 하부구조를 구축하는 것이 금전적 재분배 메커니즘을 구축하는 것 못지않게 중요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점은 양극화의 해법을 모색하는데 있어서도 마찬가지다.
지난 4월 국세청 발표에 의하면 종합소득세 신고자 중 상위 20% 사람들의 평균 소득은 1999년의 5800만원에서 2009년에 9000만원으로 55%나 증가한 반면 하위 20% 사람들의 평균 소득은 306만원에서 199만원으로 54%나 급감했다. 또한 최근 보건사회연구원의 발표에 의하면 우리나라 빈곤층 10명 중 7명은 평생 빈곤층에서 탈출하지 못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빈익빈 부익부가 극단적으로 진행되고 고착화되고 있어 양극화 문제의 해결이 점차 어려워지고 있다는 것이다.
지속가능한 복지의 대전제는 모두가 스스로 적절한 생활 수준을 유지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양질의 일자리를 많이 만드는 것이 빈익빈 문제를 해결하는 가장 좋은 방법이라는 데에는 이론의 여지가 없다. 그러나 효율성을 저하시키지 않으면서 모두에게 양질의 일자리를 제공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양질의 일자리가 능력에 비해 과하거나 체면치레를 위해 필요한 직종과 일정 수준 이상의 금전적 보상만을 의미하는 것이라면 더더욱 그러하다.
어느 직업을 갖든 일정한 수준 이상의 생활을 영위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은 대전제다. 그러나 이 대전제도 합리적인 사회적 인식 변화가 없는 한 달성하기 어렵다. 우리 노동시장의 가장 풀기 어려운 숙제 가운데 하나는 구인과 구직 사이의 눈높이 불일치다. 특히 고학력자의 경우 이러한 미스매치 문제는 심각하다. 칼뱅이 말한 직업소명까지는 아니더라도 구직자 스스로가 합리적인 직업관을 갖고 스스로 눈높이를 조정할 수 있는 사회적 여건을 마련하는 것이 가장 중요할 수도 있다.
부익부 문제는 주로 자산에서 발생한다. 2009년도 우리나라의 지니계수는 0.315로 OECD 회원국 평균 정도지만 부동산 등을 포함하는 자산 불평등도를 나타내는 순자산 지니계수는 0.63으로 매우 높으며 중위소득의 절반 이하인 사람들의 비율인 상대적 빈곤율이 15.2%로서 OECD 회원국 중 여섯 번째로 높다는 사실들이 이를 반증한다. 자산소득에 대한 적절한 과세가 필요한 이유다. 조세의 소득 재분배 효과를 측정하기 위해 흔히 세전소득과 세후소득의 지니계수 차이를 비교한다. 우리나라의 이 수치는 0.03으로 복지국가인 스웨덴 벨기에 등의 0.2보다 훨씬 작음은 물론 소득 불평등이 심각하다고 평가되는 미국의 0.08의 절반에도 못 미친다. 자산가들에 대한 조세 강화의 필요성은 분명해 보인다.
그런데 이 경우 중요한 것은 참여정부 시절의 종합부동산세와 같이 특정 계층에 대한 적개심에 불타는 무차별적이고 과도한 접근을 피해야 한다는 것이다. 공정성과 합리성의 조화를 유지해야만 과세 실효성을 담보할 수 있지만 포퓰리즘 경향이 점차 높아지는 작금의 상황에서 정책의 합리성을 어느 정도까지 기대할 수 있는지 걱정이 앞서는 것도 사실이다.
양극화를 해결하기 위한 각종 정책이 필요한데 어떤 정책이 만들어질 것인지는 결국 사회가 어떤 정책을 원하는가에 달려 있다. 당장이 아니라 다만 몇 년 뒤라도 걱정하는 긴 호흡을 갖는 합리적인 사회적 인식이 필요한 이유다.
서승환 연세대 교수 경제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