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의 시] 정릉동 동방주택에서 길음시장까지
입력 2011-07-28 20:00
신경림(1935∼ )
정릉동 동방주택에서 길음시장까지, 이것이
어머니가 서른 해 동안 서울 살면서 오간 길이다.
약방에 들러 소화제를 사고
떡집을 지나다가 잠간 다리쉼을 하고
동향인 언덕받이 방앗간 주인과 고향 소식을 주고받다가,
마지막엔 동태만 파는 좌판 할머니한테 들른다.
(중략)
하지만 일흔이 훨씬 넘어
어머니가 다니신 그 길을 걸으면서,
약방도 떡집도 방앗간도 동태 좌판도 없어진
정릉동 동방주택에서 길음시장까지 걸으면서,
마을길도 신작로도 개울도 없어진
고향집에서 언덕밭까지의 길은 내려다보면서,
메데진에서 디트로이트에서 이스탄불에서 키예프에서
내가 볼 수 없었던 많은 것을
어쩌면 어머니가 보고 가셨다는 걸 비로소 안다
서울살이 30년에 어머니는 동네 두어 정거장 안팎에 발자국을 찍으셨다. 시장바구니와 동무하며 동네 한 바퀴. 약방, 떡집, 방앗간, 동태 좌판이 어머니가 본 세상이었다.
이제 어머니만큼 나이든 시인은 세상 오만 데를 다 돌아다녔어도 어머니가 본 것보다 더 많이 본 것이 아니라며 닳아진 구두 굽을 뒤집어보고 있다. 어머니의 작은 걸음만큼 큰 걸음은 없다.
정철훈 선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