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러시아 외교갈등 비화 조짐… 美 법률회사 근무 러시아인 변호사 의문사
입력 2011-07-26 18:10
미국 법률회사를 위해 일하다가 러시아 감옥에서 의문사한 러시아인 변호사 사건을 놓고 미국과 러시아가 충돌했다. 러시아 관리들의 입국을 금지하려는 미국의 조치에 대해 러시아는 대북한 제재 등에 관한 협조를 중단할 수 있다고까지 경고했다. 사태가 확산될 경우 최근 대화 분위기가 무르익고 있는 한반도 정세에 찬물을 끼얹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게 됐다.
◇미국, “러시아 인사 비자 금지”=26일 워싱턴포스트(WP) 보도에 따르면 양국 갈등이 촉발된 계기는 미국 상원에서 최근 발의된 한 법안이다. 존 매케인 공화당 상원의원과 벤저민 카딘 민주당 상원의원은 2009년 의문에 싸여 사망한 러시아 변호사 세르게이 마그니츠키에 관한 법률을 지난 5월 발의했다. 법안에는 마그니츠키 사건과 관련 있는 러시아 인사들의 명단이 포함됐고, 두 의원은 이들의 미국 입국을 금지하고 자산을 동결하자고 주장했다.
법안은 아직 미 의회를 통과하지 않았지만 러시아 정부가 외교 채널을 통해 미국을 ‘협박’해 왔음이 지난주 법안에 관한 미 국무부의 서면 논평에서 드러났다. 러시아는 법이 통과될 경우 미국 외교관 등을 상대로 ‘똑같이’ 비자 발급 금지 조치를 내리겠다는 입장을 전했다고 미 정부는 밝혔다. 러시아는 또 북한 이란 리비아 제재조치에 대한 협조를 중단하고 아프가니스탄에 물자 운송도 더 이상 하지 않을 수 있다고 위협했다.
미국은 러시아가 ‘협박’을 실행에 옮길 경우 이는 양국 관계의 ‘리셋’(재설정)을 의미한다는 입장이다. 그렇지만 미 행정부가 법안을 승인해 ‘외교전쟁’을 일으킬지는 의문이다. 미 정부는 서면 논평에서 “힐러리 클린턴 국무장관이 마그니츠키 의문사에 관련된 인사의 입국 금지를 그동안 차근차근 추진해 왔다”고 밝히는 동시에 이를 실행으로 옮기기 어렵다는 입장을 나타냈다. 미국 정부 관계자들은 입국 금지에는 충분한 근거가 필요하다며 신중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
법안이 마련된 건 미국이 처음이지만 유럽 의회와 캐나다, 네덜란드도 이 사건에 관여한 러시아 인사 60명의 입국 금지를 추진 중이다. 미국에선 60명보다 다소 적은 숫자가 거론된다. 러시아는 서방의 이런 움직임에 내정간섭이라며 불만을 표시해 왔다. 러시아 외무부는 주말 이후 이에 관한 공식 입장을 내놓겠다고 밝혔다.
◇마그니츠키 사건은=마그니츠키는 미국계 법률회사 변호사로 일하다 2008년 11월 1700만 달러 탈세 혐의로 러시아 당국에 체포됐다. 하지만 실제로는 정부 관리와 경찰이 2300만 달러 규모의 탈세를 저지른 것을 고발한 때문이라는 주장이 제기됐었다. 그는 2009년 11월 감옥에서 숨졌다.
교도소 측은 그의 치료 요청을 거부했고 숨지기 수시간 전에는 심각한 구타까지 있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그의 죽음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자 러시아 검찰은 사건 재수사에 착수했고 이달 마그니츠키의 치료를 거부한 2명의 교도소 의무관을 기소했다. 하지만 마그니츠키의 죽음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 전해진 관리들은 모두 승진하거나 훈장을 받았다.
권기석 김준엽 기자 key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