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금강산관광 실무회담 거부… 대화국면 주도권 싸고 기 싸움

입력 2011-07-26 23:59

금강산관광 실무회담 제의에 북한이 답변을 보내온 것은 26일 오후 3시쯤이다. 통일부에 온 전화 통지문에서 북한은 ‘선(先) 재산정리, 후(後) 당국회담’을 주장하며 전날 우리 측 제의를 사실상 거부했다. 정부 관계자는 “북한이 우리와 기 싸움을 벌이려는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1시간20분 뒤인 오후 4시20분쯤. 김두우 청와대 홍보수석이 예고 없이 청와대 기자실을 찾았다. 그는 “오전 국무회의 때 대통령 말씀 중 한 가지가 제대로 전달되지 않았다”며 ‘원칙 없는 대화’ 발언을 한참 설명했다. ‘대화’를 하되 ‘원칙’을 지키겠다고 강조하며 남북관계 진전 기대감에 브레이크 거는 말을 ‘적극적으로’ 공개한 것이다. 북한이 대화에 부정적으로 나오자 맞대응한 것으로 읽힌다.

이처럼 남북한 간에 대화 주도권을 둘러싼 ‘힘겨루기’가 치열하게 벌어지는 양상이다. 북한은 “29일까지 남측이 금강산관광에 대한 입장을 정리하지 않을 경우 금강산지구 부동산을 법적으로 처분하겠다”고 공언해 놓은 만큼, 급한 쪽은 남한이라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회담에 기업인을 데려오라는 것도 관광 중단에 손해를 보고 있는 민간인을 끌어들여 정부를 압박하려는 의도다.

재일본 조선인총연합회 기관지 조선신보가 이날 게재한 ‘북남회동→조미대화 재개, 봉쇄된 서울의 대결노선’이란 글에도 북한의 ‘튕기는’ 모습이 담겨 있다.

신문은 “남북 비핵화회담이 남북관계 복원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선을 그으며 “외교 당국자들의 회동(남북 비핵화 회담)이 북남관계 복원을 의미하지는 않는다”고 주장했다. 6자회담 외교활동일 뿐 남북대화가 아니라는 것이다.

‘원칙 있는 대화’는 남북 비핵화 회담 성사 이후 나흘 만에 처음 나온 이명박 대통령의 남북관계 발언이다. 정부는 그동안 다자간 비핵화 대화에선 북한의 진정성 있는 조치, 남북간 정치·군사 대화에선 천안함·연평도 사과가 선행돼야 한다는 ‘원칙’을 고수해 왔다.

이 대통령의 발언은 북한을 겨냥하는 동시에 국내 여론을 향한 것이기도 하다. 비핵화 회담에 이어 정부가 금강산 실무회담 제의, 밀가루 지원 승인 등을 잇따라 내놓자 진보진영에선 남북관계 변화 기대감이 한껏 높아졌고, 보수층에선 원칙을 포기한 것 아니냐는 비판이 일었다. 북한이 금강산 실무회담을 사실상 거부하면서 양측을 다 진정시킬 필요가 생긴 셈이다.

청와대 핵심 관계자는 “8·15에 뭔가 큰 변화가 생길 거다, 남북관계가 크게 바뀔 거다 하는 얘기들이 많이 나오니까 거품을 빼주려는 것”이라고 말했다.

김 수석은 금강산관광 재개 협상과 관련해 “지금 북한이 그런 걸 할 준비가 안 돼 있고, 아직 논의하는 게 무의미한 단계인 것 같다”고 했다. 비핵화 대화에 대해서도 “10개를 기대했다면 현재 2∼3개 이뤄진 수준에 머물러 있는데, 언론은 7∼8개까지 앞서 가고 있다. 남북문제는 절대 그렇게 되는 게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태원준 기자, 이흥우 선임기자 wjta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