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업률 높이자는데 학부모들 반대… 특성화고의 역설
입력 2011-07-26 17:54
지난 22일 서울 정부중앙청사 앞에 특성화고(옛 전문계고) 학부모 수십명이 모였다. 최근 교육과학기술부가 발표한 특성화고 대입 특별전형 폐지 입법예고에 반대해 집단행동에 나선 것이다. 이들은 “전문계고 학생도 사각모를 쓰고 싶다” “전문고를 멸시의 대상으로 전락시키는 정책”이라며 입법예고 취소를 요구했다. 이에 앞서 특성화고 교장 등의 모임인 한국직업교육단체총연합회도 “학력주의와 학벌주의 완화 방안 없이 ‘선취업 후진학’ 계획을 추진하는 것은 단기간에 취업률을 높이기 위한 미봉책”이라며 반대 입장을 나타냈다. 전국에서 특별전형 폐지에 반대하는 서명도 1만여명에 이르렀다. 정부가 특성화고의 취업률을 높이겠다고 나선 정책에 특성화고 학부모가 반대하는 아이러니한 일이 발생했다.
◇교과부 “특성화고 졸업생은 취업을 해야”=교과부는 현재 중3이 대입을 치르는 2015년부터 특성화고 정원 외 특별전형을 폐지키로 한 고등교육법 시행령 개정안을 지난 6일 입법예고했다. 개정안은 26일까지 의견수렴을 마쳤고 하반기 중 확정된다. 개정안이 확정되면 현재 대학이 특성화고 졸업생을 대상으로 실시하는 특별전형의 선발 비율은 2013∼2014학년도에 3%로 축소된 뒤 2015학년도에 완전히 폐지된다
특성화고 특별전형은 대학이 정원 외 5% 내에서 특성화고 학생을 고교 때와 동일한 계열에 진학하는 조건으로 선발할 수 있게 한 것으로 2004년 도입됐다. 지난해 실시된 2011학년도 입시에서는 대학 160여곳이 특성화고 졸업자(15만6069명)의 6.8%(1만600여명)를 ‘동일계 특별전형’으로 선발했다. 대학수학능력시험 성적에서 경쟁력이 부족한 특성화고 학생들이 이런 특별전형을 통해 서울 주요 사립대에 입학했다.
교과부가 특성화고 특별전형을 폐지한 이유에는 ‘특성화고는 취업을 위한 곳’이라는 판단이 깔려 있다. 최근 특성화고가 농협 등과 취업 양해각서(MOU)를 맺는 등 특성화고에 대한 사회적 편견이 개선됐다는 분석도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교과부 관계자는 26일 “올해부터 모든 특성화고 재학생이 장학금을 지원받는데 대학까지 특별전형으로 가는 것은 특혜”라며 “특성화고 설립 취지와 다르게 대학 진학률이 지나치게 높다”고 말했다. 교과부는 정원 외 특별전형을 ‘선취업 후진학’ 체제로 개선하겠다는 입장이다. 특성화고 졸업생이 취업 후 3년 정도의 경력을 쌓은 뒤 필요에 따라 직무 연관성이 높은 학과에 진학토록 제도를 정비하겠다는 것이다.
◇학부모 “고졸이 좋은 직장 얻을 수 있나”=그러나 학생·학부모들은 거세게 반발하고 있다. 고졸자가 취업시장에서 좋은 일자리를 얻기란 시기상조라는 것이다. 특성화고 학부모 이모(45)씨는 “고등학교를 나와 좋은 직장을 얻을 수 있겠느냐”고 반문하며 “취업 후 대학에 진학하라지만 3년간 직장생활을 한 뒤엔 다시 공부를 시작하기 어렵다. 교과부가 특성화고의 우수 학생을 홀대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다른 학부모 김모(44·여)씨도 “우리 애는 중학교 내신이 상위 1.6%였지만 컴퓨터 공부를 하고 싶어 특성화고에 보냈다”며 “특성화고 학생의 꿈을 좌절시키는 정책”이라고 비판했다.
특성화고 졸업생이 전문 능력을 대학에서 갈고 닦아야 한다는 반론도 있다. 이상원 덕수고 교장은 “자신의 분야를 좀더 심화 교육받고 싶은 특성화고 학생은 대학에 진학하기도 한다”며 “특성화고 학생이 일반계고 학생과 똑같이 경쟁할 수 없다. 특별전형을 없애면 특성화고 학생이 대학에 가는 루트가 아예 차단된다”고 비판했다. 교과부는 특성화고 학생이 대학에 가려면 정원 내 일반전형으로 가면 된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수능 위주로 입시를 준비하는 인문계고 학생과 전공 수업을 들어야 하는 특성화고 학생의 수능 경쟁력은 차이가 날 수밖에 없다.
그나마 인기를 끌던 특성화고도 다시 쇠퇴할 것이라는 반론도 나온다. 서울의 한 특성화고 교장은 “어떤 부모가 자식을 고등학교만 졸업시키고 바로 취업전선에 내보내려 하겠느냐”며 “특성화고에 있는 우수한 인재도 다 빠져나가고 기업은 특성화고 출신을 안 뽑으려 하는 악순환이 반복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임성수 기자 joyls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