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르웨이 폭탄·총기 테러] 50대 프로그래머, 낚싯배로 세차례 섬 왕복 수십명 구조

입력 2011-07-24 18:18

참혹한 테러 현장에도 의인(義人)은 있었다. 53세 컴퓨터 프로그래머 캐스퍼 아일라우그는 배를 타고 섬에 들어가 공포에 떨고 있던 청소년 수십명을 구했다.

아일라우그는 22일(현지시간) 사고 현장인 우토야섬에서 북쪽으로 약 2㎞ 떨어진 스토로야섬에서 전화 한 통을 받았다. 오슬로 남쪽에 사는 친구는 다급한 목소리로 “우토야에서 끔찍한 일이 벌어지고 있으니 배를 타고 가 사람을 구하라”고 했다.

농담이라고 생각했지만 아일라우그는 일단 약 5.5m 길이의 낚싯배를 물에 띄웠다. 15분 만에 섬에 이르렀을 때 해변에서 청소년들을 봤다. 이들은 겁에 질린 표정으로 그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 그때 휴대전화에 친구의 문자가 들어왔다. ‘미치광이가 사람들에게 총을 쏘고 있다.’

아일라우그는 친구의 말이 농담이 아님을 깨달았지만 돌아가지 않았다. 해변에 배를 대고 배가 물에 가라앉지 않을 만큼 아이들을 태웠다. 청소년들은 대부분 수영복 차림에 몸을 오들오들 떨고 있었다. 아일라우그는 바위 뒤에 있는 다른 청소년들을 보고 손을 흔들었지만 반응이 없었다. 충격에 빠져 움직이지 못한다고 생각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이미 숨진 아이들이었다. 아일라우그는 세 차례 섬을 왕복해 청소년들을 섬에서 빼냈다. 빨간 헬멧을 쓰고 노란 재킷을 입고 있어 쉽게 범인의 표적이 될 수 있었지만 아랑곳하지 않았다.

권기석 기자 key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