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원 더듬는 고통의 여정… 그리고, 소설은 단련된다

입력 2011-07-22 17:57


소설가 백가흠 창작집 ‘힌트는 도련님’

얼마 전 인터넷 포털사이트를 떠들썩하게 만든 경남 통영 연쇄살인범 출몰이라는 괴소문의 유포자가 12세 A양 등 초등학생 3명과 중학생 2명으로 밝혀졌다는 뉴스가 있었다. A양은 경찰 조사에서 “처음엔 호기심으로 올렸는데 나중에는 멀쩡하게 살아 있는 학교 친구까지 죽었다는 내용으로 번지더라”며 “장난으로 올린 글이 이렇게까지 크게 번질 줄은 몰랐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소문은 입에서 입으로 옮겨지면서 과장되기 마련인데, 그런 의미에서 소문은 입으로 쓰는 소설이기도 하다.

소설가 백가흠(37)의 창작집 ‘힌트는 도련님’(문학과지성사)에 수록된 8편의 단편 가운데 ‘그리고 소문은 단련된다’는 소문이 어떻게 강력한 현실로 성장해나가는지를 보여주는 소문의 사회학적 관점에서 눈길을 끈다.

“한 달 전, 림혜숙이 어린 딸과 함께 감쪽같이 사라졌다”라는 첫 문장에서 시작되는 소설은 “황 약사의 며느리가 조용히 사라진 것은 한 달쯤 전이었다”는 문장으로 연결되면서 한 동네에서 두 건의 실종 사건이 일어났음을 예시한다. 탈북 여인 림혜숙을 찾아 나선 농장주 김씨가 현상금이 적힌 전단지를 뿌린 후부터 제보는 주체할 수 없을 만큼 쏟아지지만 정작 흔적을 찾기 어렵다.

황 약사 며느리 실종 사건의 경우 “하루도 지나지 않았는데 금구 사거리엔 약국집 며느리가 바람이 나서 집을 나갔다”는 소문으로 변질된다. 결국 황 약사와 농장주 김씨가 두 실종 사건의 주범으로 몰리는 황당한 일이 벌어진다. 소문에 대한 탐색자가 소문의 주인공이 되어버리는 전도가 일어난 것이다. 소문을 만들어내는 것은 동네 아이들인데 어른들끼리 나누는 대화에서 이를 확인할 수 있다.

“커서 소설가가 되겄어. 자네 애들은. 그렇게 따지면 동네 사람 전부가 다 기지. 허허허. 에에, 말을 들어보라니깐. 저기 농장에서 없어진 모녀 있잖아, 탈북자. 글쎄, 그 모녀를 돼지들이 먹어치웠다는 거야.”(32쪽)

바로 이 지점에서 소문은 사회학적 관점을 넘어 그 사회집단이 만들어낸 언어이자 또 다른 현실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언어사회학의 영역으로 확산된다. 여기서 소설이라는 장르와 문법에 대한 백가흠의 날카로운 자의식이 탄생한다. 그리고 그것은 소설가로서 자신의 ‘근원’을 더듬는 다른 작품들로 이어진다.

표제작엔 소설 쓰기의 한계에 다다른 소설가가 1인칭으로 등장한다. “내 안에는 과거의 기억과 선인들의 반복되는 선험적인 서사를 꿈꾸는 나와 사람 사이의 관계에서 좀더 인문학적 냉정함을 꿈꾸는 모더니스트인 나, 그리고 현실에서의 도련님인 나가 공존한다.”(123쪽)

그렇다면 이들 중 소설을 쓰는 주체는 누구인가. 이 창작집으로 미뤄볼 때 그 주체는, 스스로를 분석하는 ‘모더니스트’가 확실해 보인다. ‘도련님’의 내부에 도사리고 있는 이 모더니스트의 욕망이 백가흠의 소설적 변화의 핵심이다.

단편 ‘그래서’에 등장하는 혼자 사는 교수 출신의 노인은 집안 시계를 모두 멈추어놓은 채 무서운 독서 편력으로 무료한 시간을 극복한다. 노인 앞에, 젊은 날 노인이 가르쳤던 죽은 소설가 ‘백’이 나타난다. 곰팡이 가득 핀 방에 앉아 줄이 바뀔 때마다 글씨가 사라지는 고통스러운 글쓰기를 하는 ‘백’과 책을 쌓아 서재 입구를 막고 스스로를 영원히 책 속에 유폐시키는 노인. 두 사람의 모습은 ‘그래서’라는 접속사에 내포된 상징성으로서 끊임없이 이어가야 하는 글쓰기와 독서의 무거움과 공허함을 동시에 환기시킨다.

나아가 ‘노랑 책의 주인공 백’이라는 이름의 소설 속 젊은 작가는 실제로 백가흠의 이미지를 떠올리게 만든다. 백가흠은 자신의 소설이 어디로 가야 하는지를 소설로 보여주는 근원적인 고민의 여정을 시작했는지도 모른다. 그렇기에 이번 창작집을 관통하고 있는 주제는 ‘그리고 소설은 단련된다’로 변주된다.

강원도 원주에 머물고 있는 그는 “요즘 부모님이 짓고 있는 집과 내가 지은 집의 차이에 대해 골똘해진다”며 “(내 소설들은) 내가 지은 집 같지 않고 낯설기만 하다. 다음 기회에, 내 부모님이 지은 시골집 같은 사랑으로 가득한 소설을 꼭 짓겠다고 다짐해본다”고 말했다.

정철훈 선임기자 chju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