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가 5적’ 잡아야 가계가 살죠… ‘주부물가모니터단’이 제안하는 물가 대책

입력 2011-07-21 11:31


우리는 물가 잡는 아줌마예요. 행정안전부가 주부물가모니터단으로 선발했을 정도니 국가가 우리의 역량을 인정한 셈이죠.

평균 나이 47세. 자녀는 둘 정도. 가구 소득 수준은 월 400만∼500만원. 아파트부녀회장, 통·반장, 동문회 총무, 시정 모니터 요원, 학부모 감시단원, 자원봉사단장 등 돈 안 되는 감투 하나씩은 다 달았어요. 오지랖 넓다고 가끔 남편들로부터 타박도 듣지만 대한민국 국민의 한 사람으로 목소리를 내고 있다는 데 굉장한 자부심을 느끼고 있다고요.

우린 살림도 잘해요. 얼마나 억척스럽다고요. 다들 물가 못 잡아 안달인데 주부 구력 20∼30년쯤 되면 보이는 게 있다고요. 우리가 마음먹으면 요동치는 물가도 잡을 수 있다, 그런 생각을 갖고 현장에 뛰어들었어요.

그런데 정부는 아직 우리를 과소평가하는 것 같아요. 물가를 감시하기 위해 밤낮으로 뛰어다녔는데 고작 일주일에 한 번 설문응답하는 게 전부예요. 질문도 매번 똑같아요. 물가수준이 일주일 전과 비교해 어떻다고 생각하느냐, 뭐가 올랐냐. 뭐 최근 농심 신라면 블랙이 공정거래위원회로부터 과징금을 받은 게 이런 설문의 영향을 받았다고는 하지만.

대통령 지시로 물가모니터단이 꾸려졌으면 제대로 운영해줬으면 해요. 설문응답한 대가로 5000원이 입금되는데 우리 그거 통장 확인도 안 해요. 돈이 문제가 아니라, 우리를 좀 제대로 활용하란 말이죠. 오죽 답답했으면 우리가 직접 현장에 가겠다고 했을까(행안부는 이달 말부터 전국의 주부물가모니터단 745명을 물가 현장에 투입, 품목별 실제 물가 조사를 실시한다고 21일 밝혔다).

사실 우리는 인생이 물가조사예요.

물가가 별겁니까. 우리가 매일 장바구니에 넣는 물건 가격, 우리가 매달 아파트관리비다 전기세, 상하수도요금이다 뭐다 해서 내는 요금, 자가용 기름값, 애들 교육비, 휴대전화 요금 이런 게 다 물가 아니에요. 매일 부닥치는 게 물가고, 매일 적는 게 가계부잖아요. 일주일 지나고 한 달 지나고 1년 지나면 보이죠 왜 안 보여요. 우리 같은 사람들 놔두고 뭐하냔 말이죠. 높으신 분들이 책상에 앉아 물가를 어떻게 할까 전전긍긍하지 말고, 우리 얘기 좀 들어봐요

(주부물가모니터단 중 물가대책 아이디어를 제안하러 지난 19일 서울 세종로 행안부를 찾은 7명을 심층 인터뷰했다. 서울지역의 김영희(51·서울 신대방2동), 윤성희(55·삼선동4가), 곽신옥(48·개봉2동)씨와 인천 장윤실(54·선학동), 변인화(55·부평1동)씨, 경기 수원 라영희(44·골반정동), 남미현(41·영통동)씨다.)

물가오적

현장하면 왜 시장만 생각하냐고요. 재래시장, 마트, 백화점 말곤 갈 데가 없나요? 물가대책회의를 왜 시장에서 해요. 시장 물가 물론 중요하죠. 당장 먹을거리니까. 하지만 싸게 물건 살 데는 많아요. 코스트코(창고형 할인매장) 가면 벨기에산 삼겹살 6㎏에 3만5000원하거든요. 그럼 10근이죠. 같은 돈 주고 국산 삼겹살 사려면 3근도 어림없어요. 벨기에산 삼겹살이 너무 커서 자르기 힘들고, 맛을 내려면 와인에 오래 담가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죠. 하지만 주부들이라면 다 먹고 살아갈 길을 만들어요.

막상 한 달 생활비 중 식비(외식비를 제외한)가 차지하는 비중은 10%도 안 될 걸요? 그럼 뭐냐. 나머지 90%를 잡아야 할 거 아니에요.

그래서 우리가 모여 얘길 나눠봤죠. 50대 주부들한텐 제일 큰 문제가 등록금이야. 그런데 등록금은 반값 등록금 한다 어쩐다 하고 있으니 지켜보기로 하고. 30대 주부는 보육비, 40대는 학원비인데. 30대 맞벌이하는 주부들 보면 불쌍해요. 어린이집 보내면 불안하니까 도우미를 쓰는데 한 달에 130만원씩 준대요. 그럼 회사 다녀서 돈 벌어 차비 쓰고 밥 사먹고 뭐가 남아요. 어린이집? 왜 시립 구립 어린이집은 신청하면 6개월, 1년 있다 들어갈 수 있는데요. 40대들은 학원비가 골치예요. 강북이고 강남이고, 어디든 간에 애 둘 키우면 학원비 50만원은 기본이에요. 그래서 제1의 적(敵)은 교육비다. 그렇게 꼽아봤어요.

다음 기름값. 기름값 3개월간 100원 인하했다고 엄청 생색내더니, 그렇다고 한꺼번에 다시 올리면 어떡하느냐고요. 기름값만 문제가 아니라, 주차요금도 덩달아 올라요. 우리처럼 물가 잡으러 다니는 사람들은 주차요금 면제해줘야 하는 거 아닌가요?

그리고 통신비. 다른 것은 안 바라요. 통신비 기본요금. 기본요금만 내려 달라 이거예요. 스마트폰 쓰는 집은 4인 가족 기준 한 달에 30만∼40만원 금세 나가요. 누가 효도폰 쓰면 전화 받고 쓰는 기능만 넣고 한 달에 2만∼3만원이면 된다고 그러대. 여보세요. 우리는 아줌마라도 최첨단 소셜 네트워크(SNS)로 무장한 얼리어댑터예요. 그래야 물가 잡죠. 폭리 취하는 업자 있으면 찍어서 올려야 하고, 서비스 나쁘면 개선하라 또 올려야 하고. 그래야 살림살이 나아질 거 아니에요.

외식비. 우리 남편 회사가 서울 삼성동에 있어요. 근데 점심 때 먹을 게 없다는 거예요. 짬뽕이 8000원이래요. 나머진 1만원은 있어야 된대요. 그래서 그 남편 하는 말이 둘, 셋이서 짬뽕이랑 칼국수에 공기 밥 시켜서 나눠 먹는대요. 기업체 부장인데. 한 달 남편 점심 값만 50만원이 든다 하대요. 커피 안 마시는 게 ‘생큐’지요.

그래서 우리들 중엔 외식 아예 끊은 집도 많아요. 남편 식비야 어쩔 수 없다치고 우리라도 안 먹어야 될 거 아니에요. 우리 아들이 그래요. “엄마 아웃백 안 가본 지 2년 됐어.” 그럼 이렇게 말해요. 엄마표 아웃백이 있잖아. 하지만 애들 성화에 언제까지 버틸지 모르겠네요.

교육비, 기름값, 통신비, 외식비. 그리고 하나 더 꼽으라면 과일 값이 있겠네요.

수박은 안 먹어요. 그래도 가끔 생각나지. 참고 참다가 장마철 지나고 물 찬 수박 좀 사먹었네요. 근데 수박뿐 아니라 다른 과일도 너무 비싸. 특히 수입 과일은 왜 그렇게 비싼데. 지난 18일 밤에 홈플러스에서 워싱턴 체리 사먹었거든요? 18일 자정 땡 할 때 가서 전일상품 할인 해줄 거라 기대했는데 안 해주데요. 8000원 줬어요. 더 열 받는 건 중량 표기가 안 돼 있는 거야. 잠이 쏟아져서 집에 와서야 알았네요. 괘씸해서 달아봤지. 500g이에요. 비싼 거라고요.

안 먹으면 된다지만 여름 내내 참외만 먹을 수 있나요? 삶의 질이라는 게 있는데. 참외도 한 개 1000원꼴로 예전에 비해 싼 것도 아니야.

아줌마들이 잡은 물가, 신라면 블랙

신라면 블랙과 롯데 월드콘XQ 가격은 우리가 끌어내렸어요. 기름값도 우리가 잡은 거 아닌가? 3개월간 우리가 잡은 거 아니에요? 아무튼 설문응답 때마다 적어 냈거든.

실제 신라면 블랙은 주부들의 목소리가 정책에 반영된 사례였다.

기획재정부 물가정책과는 “리뉴얼 제품의 논란이 많아서 주부들이 어떻게 보고 있는지 조사했고, 실제 정책에 주부물가모니터단의 응답 결과를 반영했다”고 밝혔다.

리뉴얼 제품에 관한 설문은 매주 진행되는 설문의 항목으로 포함돼 6월 한 달간 네 차례 진행됐다.

통계청이 해당 설문을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6월 7∼10일 주부물가모니터단 745명 중 645명이 설문에 응해 그중 66%가 리뉴얼, 프리미엄 가공식품을 구입해봤다고 응답했다. 품목별로는 신라면 블랙(라면)이 45%, 월드콘XQ(아이스크림) 40%, 조지아 에메랄드 마운틴(커피) 12% 순이었다. 신라면 블랙은 품질개선을 묻는 항목에서 특히 나쁜 평가를 받았는데, 기존 신라면과 차이가 없다는 응답이 34%, 미달이라는 응답은 41%에 달했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지난달 27일 신라면 블랙과 관련해 농심 측이 ‘설렁탕 한 그릇의 영양이 그대로 담겨 있다’ ‘완전식품에 가까운 식품’ 등으로 표시했다며 시정명령과 함께 1억5500만원의 과징금을 부과했다.

정책효과는?

하지만 실제 정책에 주부들의 목소리가 반영되는 사례는 거의 없었다. 애초부터 체감물가의 추이를 보는 참고 지표 정도로 활용하려 했기 때문이라는 게 기획재정부의 설명이다. 이미 재정부를 비롯해 서울시, 한국물가협회 등에서 물가정보 사이트에 실시간으로 물가 정보가 올라오고 있다. 생각만큼 주부들이 조사한 물가가 정책에 보탬이 되지 않는 이유다.

그간 차관급 물가대책회의에 꾸준히 참석해 온 정부 관계자는 “주부들의 설문조사가 일주일 전에 이뤄지다 보니 타이밍상 늦는 감도 있고 실제 안 오른 품목까지 올랐다고 응답하거나 기존에 알려진 것 이상의 정보가 담겨 있지 않았다”며 한계도 지적했다.

주부들의 물가 정책 참여가 열정만큼 효과를 거두긴 쉽지 않다고 판단되는 대목이다.

그래도 주부는 물가의 최전선에 서 있는 사람들이다.

서울대 소비자학과 최현자 교수는 “주부가 물가를 잡을 수 있는 방법은 가격이 과도하게 오른 상품에 대해 불매운동을 펼치는 방법밖에 없을 것”이라면서도 “하지만 물가인상요인이 원재료가 아닌 다른 데 있다면 소비자가 적극적으로 나서야 하고, 주부들이 물가의 최일선에 있는 사람들이니 누구보다 상황을 잘 알 것”이라고 주부들의 역할을 강조했다.

정부 정신 차려라

인하대 생활과학대학장 이은희 교수는 물가 얘기만 나오면 속이 답답해진다. 정부가 성장 일변도의 정책을 펼쳐 물가를 끌어올려놓고 이제 와서 미시적 접근을 강조해본 들 효과가 있을지 의문도 든다. 하지만 지금이라도 가계를 점검해보면 좋겠다는 게 이 교

수의 생각.

그래서 그가 제안하는 대안이 가계소비영향 평가 제도를 만드는 것이다. 가계나 소비에 영향을 주는 제도를 다시 평가하는 제도다. 현재 이 교수는 이 제도 설립을 위해 학계의 의견을 모으고 있다.

그는 주부평가단도 제안했다. 기존의 소비자단체와 구별되는 진짜 살림하는 주부들의 작은 의견이 모일 수 있는 공간을 만들라는 것이다.

아줌마들도 할 말은 많다.

지난해 배추파동 때 배추가 밭에서 자라나는 것은 생각도 안하고 중국산 배추부터 수입해 결국 이듬해 봄, 배추값 폭락으로 이어졌다는 지적. 그 바람에 배추밭 싹 갈아엎고 다른 농사지어서 올해 가을 김장 때도 배추값 때문에 난리 나게 생겼다는 걱정. 대기업들이 빵가게며 떡볶이 가게며 작은 영세상인 터전까지 가져가더니, 어느 날 가격을 한꺼번에 올리더라. 정부는 왜 가만 보고 있느냐는 원성까지 주부들의 목소리는 곳곳에서 터져 나왔다.

윤성희 아줌마의 가슴 아픈 에피소드 하나. 일명 ‘엄마 팬티(순면 100%의 대형 팬티)’만 입는다는 그녀는 팬티가 너덜너덜해져 마트에 갔다가 3개 2000원하던 엄마 팬티 가격이 1만원으로 올라 빈 손으로 돌아와야 했다. “그냥 꿰매 입어야죠. 옛날 생각하면 못 사죠.”

이 대목에서 이용희 한신정평가 대표이사 부회장의 조언을 귀담아 들을 법 하다. 그는 외환위기 직후 재정경제부(기획재정부 전신) 국민생활국장을 지내면서 물가관리업무를 맡았다.

“요즘 경제관료들은 새벽에 잠바 걸치고 배추 들어오는 트럭 숫자 세고 산지 가는 걸 싫어하는데. 생활물가라는 게 시장 바닥의 물가이기 때문에 현장 조사를 철저히 하고 수송, 경매 모든 과정을 다 점검해야 한다. 배추파동 났을 땐 파종 면적부터 확인해야 하는 거고. 이런 걸 안하고 있다가 값이 오르면 수입하고. 그러니 물가안정이 안 된다. 물가는 고삐 풀리면 어느 누구도 못 막는다.”

글=이경선 기자 bokyu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