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 다섯… 정말 키울 만합니까?

입력 2011-07-21 14:29


11월 다섯째 탄생… 서광일씨 가족

지난 14일 서울 길동에서 만난 가족은 4남매와 임신한 아내, 목사 후보생인 남편이었다. “솔직히 키울 만하냐”고 물었다. ‘솔직히’를 강조했다. 아내 박희정(35)씨가 즉답했다. “정말 좋죠. 아이가 한두 명일 때보다 훨씬 행복해요. 가족이 웃을 일이 늘었고요, 더 풍성하고 배려하는 집이 됐어요.” 박씨는 결혼 10년 만에 다섯 번째 출산이다. “애초 다섯 명은 낳기로 합의했었다”고 그가 덧붙였다.

남편 서광일(40)씨는 한국대학생선교회(CCC) 전임간사다. 서울 길신교회 유초등부 강도사로 일한다. 강도사는 일부 기독교 교단에서 목사 안수를 앞둔 사람을 말한다. 서씨는 오는 10월 목사가 된다.

부부의 얼굴에선 피로감을 찾아볼 수 없었다. 양육 부담과 빡빡한 살림에서 나올 표정이 아니었다. 한두 명을 키우며 버거워하는 다른 부부들의 모습과 대조됐다. 예정된 막내는 아들이다. 이름은 ‘영광’이라고 지었다. 11월 만난다. 아들 하늘(10)과 딸 바다(7) 별(6) 솔(2)이 고대하는 기색이었다.

아기는 헤엄치듯 나왔다

부부는 1998년 1월 CCC 간사 훈련장에서 만났다. 그해 9월 선교사로 중국에 함께 파송되면서 사귀었다. 서로 다른 지역에서 일했다. 기차로 17∼20시간 거리였다. 떨어져서 1년 반 교제했다. 두세 달에 한 번씩 만났다. 편지를 자주 썼다. 인편으로 일기장을 교환했다. 결혼하자는 말은 박씨가 먼저 했다.

다섯 명쯤 낳자는 합의는 결혼 준비 과정에서 도출됐다. 2000년 12월 25일 귀국해서 다음달 15일 결혼했다. 밥통 하나만 가지고 중국으로 돌아갔다. 박씨의 선교지이던 산시성 시안(西安)에서 신혼생활을 시작했다.

박씨는 이듬해 초산했다. 입덧은 없었다. 진통 기간은 짧았다. 병원은 열악했다. 천장엔 백열전구가 흔들렸고 환자 식사로 나오는 빵은 빳빳했다. 복도의 화장실은 문이 없었다. 사람들은 일렬로 쭈그리고 용변을 봤다. 사람들은 산부인과 복도에서 담배를 피웠다. 산시성에서 세 번째로 큰 병원이었다.

첫째 하늘을 낳던 날 마지막 진통을 했다. 텔레비전 드라마에서 본대로 소리를 질렀다. 그래야 하는 줄만 알았다. 간호사는 “입 좀 다물라”고 했다. 아기는 물속을 헤엄치듯 자신의 몸을 빠져 나갔다고 박씨는 말했다. “그 느낌을 잊을 수가 없어요. 참 좋았어요.” 간호사가 아이를 보여줬다. 박씨는 쌍꺼풀이 없는 것만 보였다. 간호사는 “갓 태어나서 그렇다”고 했다. 하늘은 아직 쌍꺼풀이 없다.

하늘은 대충 닦인 채 집으로 왔다. 머리에 미끈거리는 딱지는 2주 넘게 벗겨지지 않았다. 하늘은 침대에서 여러 번 떨어졌다. 중국의 집 바닥은 돌이었다. 응급실에 자주 실려 갔다. 경련을 일으키며 쓰러지기도 했다. 부부는 마음 비우는 법을 배웠다. 목숨은 부모가 좌우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친정에 알리지 않은 사실

부부는 2005년 8월 귀국했다. 한 달 뒤 셋째 별을 낳았다. 둘째 바다는 2004년 잠시 귀국해서 출산했었다. 솔은 2009년 태어났다. 부부는 둘째를 낳고부터 여유가 생겼다. 한 명만 키울 땐 허둥거렸다. 요령이 없었다. 부부가 아이를 번갈아 안으며 밥을 먹었다. 아이가 잘 때 비로소 숨을 돌렸다.

박씨는 한 차례 유산했다. 솔을 갖기 전이었다. 낳았다면 그 아이가 넷째였을 것이다. 셋째를 낳고 체력을 과신했다. 대구교대 졸업자인 박씨는 기간제 교사로 일하고 있었다. 이사할 땐 짐을 손수 날랐다. 시간이 지나도 배가 부르지 않았다. 병원에서 유산 사실을 들었다. 임신 2개월쯤 됐을 때였다.

임신과 출산은 거듭한다고 익숙해지는 건 아니라고 박씨는 말했다. “매번 새로워요. 나이 들수록 두렵긴 해요. 첫째는 그냥 황홀했는데 넷째는 몸이 많이 무겁다는 걸 느꼈어요.” 박씨는 솔을 낳고 체력이 바닥났다. 아이들을 돌보면 녹초가 됐다. 저혈압 증세도 있었다. 더 낳고 싶은데 자신은 없었다. 입양을 결심했다. 몸으로 안 되면 마음으로 낳자는 생각이었다. 다섯째 아이는 그때쯤 들어섰다.

“부정적인 반응이 더 많아요. 가까운 사람일수록 그런 것 같아요. 걱정되니까.” 박씨는 다섯째 임신 사실을 전하는 게 조심스러웠다. 아이는 자랑스럽지만 주변의 우려는 부담스러웠다. 아이들 입단속을 시켰다. 별은 이웃을 만나면 “너무 하고 싶은 말이 있는데요, 말하면 안돼요”라며 꿋꿋이 참았다.

현재 임신 사실은 친정에서 모른다. 말하지 않았다. 친정어머니는 그만 낳으라고 했었다. 딸이 축나는 것 같았던 모양이다. 모유를 먹이는 것도 속상해했다. 부부는 곧 찾아가 소식을 전할 참이다.

이 부부가 아이 키우는 법

부부는 서씨 수입으로 생활한다. 강도사의 월급은 같은 연조 회사원보다 적은 편이다. 그 돈으로도 살림하고 저축한다고 박씨는 말했다. “한두 명 키우는 데 힘들다는 부모는 입소문 따라 가장 좋은 것만 해주려니까 그래요. 외제 유아용품 쓰고, 학원은 월 50만원은 되는 곳에 보내야 하고. 그걸 아이한테 못해준다는 생각이 들면 바가지를 긁게 되죠. 여자보다 남자가 양육에 부담을 느끼는 시대예요.”

박씨의 아이들은 보습학원을 안 다닌다. 교육청에서 제공하는 인터넷 가정학습 사이트와 교육방송(EBS)을 활용한다. 하늘은 축구와 컴퓨터, 바다는 바이올린과 점토 공예를 방과후 학교에서 배운다. 수강료는 교육청에서 지원된다. 학습지나 참고서는 보조금으로 살 수 있다. 바다와 별은 최근 피아노 학원에 등록했다. 한 명치 수강료만 낸다. 기독교인인 원장이 목회자 딸인 걸 알고 배려했다.

주변에서 바람을 넣는 사람은 많다. 대개 ‘남의 아이가 하니까 뒤처지지 않으려면 해야 한다’는 식이다. 박씨는 동요하지 않는다고 했다. “엄마들은 아이를 어디에라도 보내 놔야 안심이 된다고 해요. 눈앞에 있으면 공부를 안 하는 게 보이니까 불안해서 공부를 하든 안 하든 어디든 보내는 거죠.” 박씨는 하늘에게 영어와 중국어를 가르친다. 강동구에서 운영하는 ‘사이버 어학당’도 함께 수강한다.

박씨는 자녀 양육에 관한 책을 다독한다. 감정을 배제하고 아이를 대하려 노력한다. 아이들은 서로 어울리며 양보하고 문제를 해결하는 법을 배운다. 종종 다친다. 부부는 괜찮다는데 이웃들은 친자식 보듯 호들갑이다. 이웃집에 가면 솔이 다칠세라 사람들은 눈을 못 떼고 “어머머”를 연발한다.

성격은 이름 따라 제각각

아이들은 계절마다 태어났다. 하늘은 봄(5월), 바다는 겨울(1월), 별은 가을(9월), 솔은 여름(7월)이다. 성품은 이름을 닮았다. 초등학교 4학년인 하늘은 의젓하고 승부욕이 강하다. 집안일을 의욕적으로 돕는다. 엄마가 아플 땐 밥도 짓는다. 동생에게 엄격하다. 주관이 강한 별과 자주 부딪친다.

초등 1학년인 바다는 속이 깊다. 천생 숙녀라고 서씨가 말했다. “사람을 잘 품어요. 어릴 때부터 엄마나 별이 울면 같이 울고, 아픈 사람 보면 공감하더라고요.” 박씨는 바다가 자기 것을 포기하고 양보만 할까 봐 걱정이다. 유치원생인 셋째 별은 개성이 강하다. 인정받으려는 욕구가 있다. 크리스마스 행사 때 성경을 우렁차게 암송해서 환호를 받았다. 서씨가 귀가하면 맨 먼저 달려와서 안긴다.

곧 막내 자리를 내주는 솔은 형제가 울면 다가가 몸을 쓰다듬는다. 언니 오빠가 벌설 때 옆에서 함께 손을 든다. 말문은 아직 트이지 않았다. 아이들은 서로 짜증내다가도 솔이 장난을 치면 풀어진다.

부부와 이야기하는 동안 아이들은 방을 옮겨 다니며 놀았다. 집은 50㎡(약 15평)쯤 돼 보였다. 주택가 상가 건물 2층이다. 건물 주인이 한 층을 두 집으로 나눠 세를 줬다. 아래층은 식당이다. 아이들이 뛰어놀 수 있다는 점 때문에 선택했다. 방은 셋이다. 하늘이 서재에서 자고, 바다와 별이 침대 방에서 잔다. 부부는 솔과 안방에서 잔다. 아이들은 이층 침대가 생기게 해 달라고 기도 중이다.

“우리 힘으로 자녀를 키운다고 생각 안 해요. 낳고 싶어도 못 낳는 부부가 있는 걸 보면 저희가 낳고 싶어 해서 이 아이들을 얻은 건 아닐 거예요.” 부부는 해외 선교지를 물색 중이다. 내년 9월쯤 나갈 계획이다. 별이 방에서 나와 서씨에게 안겼다. 뜬금없이 말했다. “제가 막내 제일 오래 했어요.” 서씨가 물었다. “제일 사랑 많이 받은 거 알아요?” “몰라요.” 별은 서씨 품을 파고들었다.

글 강창욱 기자·사진 강민석 선임기자 kcw@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