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김찬규] 황당한 소말리아 해적
입력 2011-07-19 19:31
“해적, 테러리스트와는 타협하지 않는다는 단호한 자세를 견지해야”
인도네시아에서 2만8000t의 야자유를 싣고 케냐 몸바사로 가던 싱가포르 선적 화물선 마운틴 제미니호가 지난 4월 30일 몸바사항 남동쪽 308㎞ 해상에서 소말리아 해적들에게 납치되었다. 배에는 선장을 포함한 한국인 4명, 인도네시아인 13명, 미얀마인 3명, 중국인 5명 등 모두 25명이 타고 있었다.
납치 후 선박회사와의 몸값 협상이 여의치 않자 해적 중 하나인 하산 아브디란 자가 최근 황당하기 그지없는 제안을 하고 나섰다. 삼호 주얼리호 구출 작전이 있던 지난 1월 21일 아덴만 여명작전 때 사살된 8명의 해적에게 한국 정부가 보상을 하고, 1심 재판에서 유죄 판결을 받고 항소 중에 있는 해적 5명을 석방함과 동시에 보상금을 지급하면 마운틴 제미니호 한국인 승조원 4명을 석방할 용의가 있다고 한 것이다.
이에 대한 정부의 태도는 단호하다. 협상을 하려면 싱가포르 선박회사와 할 일이며 해적 등 범죄인들과는 어떤 타협도 하지 않는다는 게 한국 정부의 확고한 입장임을 분명히 했다. 노무현 정부 때 아프가니스탄 테러리스트들에게 납치된 선교단 석방 교섭을 위해 국정원장이 현지에 간 일이 있다.
공개된 행차였기에 그의 동선은 놀랍도록 자세히 보도됐고 협상 후 가진 기자회견 때 찍힌 사진에는 국정원장뿐 아니라 그곳에서 활동한 비밀요원의 얼굴마저 크게 나와 이것이 과연 국정 운영의 참 모습인가를 의심케 했다. 국가 경영에는 일일이 밝힐 수 없는 부분이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어떤 경우에도 상식에서 벗어난 일이 있어선 안 될 것이다. 그러므로 이번 일에 정부가 취한 태도는 정도였다고 본다.
1985년 10월 7일 이집트 포트사이드항을 떠난 이탈리아 선적 아킬레 라울로호가 거안(距岸) 48㎞ 지점에서 타고 있던 테러리스트 4명에게 납치되었다. 이스라엘에서 복역 중인 50명의 팔레스타인인들을 풀어주면 배와 승객을 석방하겠다고 했으나 이스라엘이 이를 거절하자 승객을 한 사람씩 살해하겠다면서 본보기로 휠체어를 탄 유대계 미국인 레온 클링호퍼를 사살해 휠체어와 함께 바다에 던져 넣었다.
예기치 않은 사태 진전에 놀란 당해 테러단체 지도자가 팔레스타인해방기구(PLO) 간부와 함께 이집트로 달려와 협상을 개시했다. 그 결과 테러리스트를 이집트 정부에 투항케 하는 대신 이집트는 이들과 테러단체 지도자, PLO 간부를 국외로 탈출시킨다는 데 합의했다.
그런데 이들을 태운 이집트 국적기가 지중해 공해 상공에서 미군기들의 요격을 받아 시칠리아 섬에 있는 나토 공군기지에 강제 착륙을 했다. 하지만 이탈리아가 미국의 범죄인 인도 요청이 있기 전에 이들을 국외로 탈출시켜 버림으로써 사건은 마무리되었다. 이 사건이 남긴 교훈은 국제 공조 없이는 국제 범죄가 근절될 수 없다는 사실이었다. 이와 관련된 법적 허점을 보완하기 위해 체결된 것이 1988년의 수아(SUA) 협약이다.
소말리아 해적의 특징은 생계형이 아닌 기업형이고 320㎞ 바깥까지 진출하는 광역형이다. 그들의 행동은 대수롭지 않은 듯하면서도 국제 해운을 마비시켜 세계경제를 혼란 속에 몰아넣을 수 있는 폭발성을 지니고 있다. 그래서 유엔 안보리는 이를 국제 평화와 안전에 대한 위협으로 간주해 소탕을 위한 국제 공조를 호소하고 있다.
국제사회가 제일 우려하는 것은 그들과 국제 테러단체, 특히 알카에다와의 연계 가능성이다. 만일 그들이 알카에다와 연계된다면 대중적 지지가 결여된 공권력, 부족 중심의 국가 조직, 열악한 생활여건 등 공통점을 지닌 중동 및 아프리카에는 정치적 지각변동이 올 것이며 이에 따라 국제 질서에도 큰 재앙이 닥칠 것임은 명백하다.
이에 대해 효율적으로 대처하기 위해서는 지금과 같은 느슨한 국제 공조로는 안 되며 보다 결속력 있는 유엔 주도의 국제 공조가 필요하리라고 본다. 각국도 엉거주춤한 눈치작전이 아니라 국제 범죄와는 타협하지 않는다는 단호한 자세와 그 실행이 있어야 하리라고 본다.
김찬규 (국제상설중재재판소재판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