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시평-송원근] 대기업과 아틀라스, 혁신

입력 2011-07-17 17:42


대기업 때리기가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 야당은 물론 여당 대표 경선에 출마했던 정치인들도 경쟁적으로 대기업들을 비난했고 정부 고위 인사들도 여기에 가세하고 있다. 한 인사는 “납품단가를 조정한 대기업 임직원들은 해고해야 한다”며 자유로운 기업 활동을 위협하고, 홍준표 한나라당 대표는 대기업 하면 ‘착취’가 떠오른다는 발언까지 한 바 있다. 대기업에 대한 비난의 요지는 정부의 친기업 정책으로 대기업만 혜택을 보았음에도 이들은 투자와 고용을 늘리지 않고 오히려 중소기업과 중소상인의 영역까지 침범해 양극화를 심화시키고 있다는 것이다.

대기업에 대한 비난과 함께 정책적 압박도 커지고 있다. 정부와 정치권은 동반성장이라는 미명 하에 초과이익공유제, 중소기업 적합업종 제도 등으로 대기업 이윤의 재분배, 특정 산업에 대한 진입 제한을 시도하고 있다. 2001년 폐지됐던 중소기업 고유업종 제도 부활을 꾀하고 있고, 서비스 부문 진입 제한을 위한 법안을 준비 중이며, 대기업에 사업조정 이행을 강제할 대책도 추진하고 있다.

대기업 때리기는 미국 작가 아인 랜드가 소설 ‘아틀라스(Atlas shrugged)’에서 묘사한 상황과 흡사하다. 소설에서 열정적이며 창조적인 기업인들은 공익을 명분으로 한 사회·정치적 압력과 과도한 세금, 규제 등에 시달린다. 정치인들은 정의와 공익의 이름으로 법과 규제를 만들어낸다. ‘동일업종상생규칙’ ‘기회균등법’ 등이 그것이다. 명칭이야 그럴 듯하지만 내용은 동일 업종에서의 경쟁을 제한하고, 한 사람이 한 기업만 소유하도록 강제하는 것이다. 기회균등법의 명분은 강자가 아닌 사람들에게도 기회를 주기 위한 것이나 실상은 생산적이고 혁신적인 사람들이 소유하고 있던 기업들을 몰수해 정부의 힘을 이용하는 비생산적인 세력에게 나눠주기 위한 것이다.

대기업이 계획한 목표 이익을 초과하면 그 이익을 협력 중소기업과 공유토록 하는 초과이익공유제, 특정 업종에서 대기업들을 배제하려는 중소기업 적합업종 제도는 랜드의 소설 속 법안들과 유사하다. 그렇다면 소설 속의 혁신적 기업인들과 달리 한국 대기업들은 혁신적이지도 않으면서 약자를 괴롭혀 부당하게 이득을 얻고 있는가? 글로벌 금융 위기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대기업이 정부 정책의 혜택을 입었으면서 투자와 고용을 늘리지 않았다는 말은 사실이 아니다. 대표적인 대기업 정책으로 거론되는 고환율은 금융 위기로 인한 자본 유출로 시장에서 나타난 현상이지 정책의 결과가 아니다. 위기에도 불구하고 대기업의 투자와 고용 증가율은 높았다. 경기 침체기에 연구·개발(R&D) 투자가 높았던 사실에서 보듯 기업들은 세계시장에서의 경쟁을 위해 위험을 감수하고 투자를 감행하는 혁신적이고 생산적인 집단이며 한국경제를 움직이는 동력이다.

대기업들을 압박하기 위해 쏟아진 각종 정책들, 자발적인 성과 공유가 아닌 강제적인 기업 이윤 재분배, 기업 간 자유로운 경쟁 제한과 같은 정책들은 기업 활동의 유인을 감소시킨다. 대기업으로 모여드는 인재들은 치열한 경쟁 속에서 개발과 혁신을 통해 경제와 사회의 발전을 이끄는 원동력이다. 자유로운 기업 활동에 대한 압박은 뛰어난 인재들을 끌어 모을 인센티브를 제약하고 이는 사회 전체의 혁신 역량을 정체시킨다. 랜드의 소설에서는 창조적이고 혁신적인 사람들이 정의와 공익을 명분으로 행해지는 사회적 압박 속에 하나둘씩 사라져 가는 파업을 벌이면서 결국은 세상이 멈춰버린다.

현실에서 혁신적인 사람들과 기업들이 사라지는 것은 소설 속에서보다 더 쉽다. 세계화가 급속히 진전된 세상에서 뛰어난 인재들이 국외로 빠져나가고, 생산적인 기업들이 새로운 둥지를 찾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혁신과 생산에는 기여하지 않으면서 공정과 정의를 앞세운 기생적인 정치·사회 세력의 압박 속에 우리도 모르는 사이 경제 발전의 동력은 서서히 꺼져가고 있다. 그리스 신화 속의 아틀라스는 하늘을 떠받치고 있다. 아틀라스가 하늘을 서서히 내려놓으면 세상은 어떻게 될까.

송원근(한국경제硏 연구조정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