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예수 나홀로 방랑기(7)

입력 2011-07-12 11:34

“나도 팽이, 너도 팽이란다”

하루 종일 매섭게 추운 바람이 휘몰아쳤습니다. 한강도 꽝꽝 얼었다는 뉴스가 흘러나왔습니다. 조그만 연못은 바닥까지 얼어붙었을 법 합니다. 그리고 해는 벌써 산 너머로 사라졌고 맹추위가 옷 속으로 몰려오고 있었습니다.

나 예수도 그 때 부지런히 발걸음을 옮겨 숙소로 가는 길이었습니다. 시골 동네를 지나는데 길가 연못에서 팽이 치는 소년을 만났습니다. 이처럼 추운 날인데 옷도 헐렁했고, 방한모자조차 쓰지 않아 귀 바퀴도 새빨갛게 얼었습니다. 그런데 팽이는 휙휙 매서운 소리가 나도록 두드려 패고 있었습니다.

“얘야, 네 이름이 무어냐?”

“이름은 알아 뭘 해요? 아저씨.”

초등학교 5, 6학년쯤으로 보였는데 좀 대드는 투였습니다. 목소리에는 분노와 눈물이 함께 섞여 있었고 얼굴에는 아직도 눈물 흐른 자국이 남아 있었습니다. 무슨 억울한 사연이 있는 것이 분명했습니다.

“너 왜 집에 가서 저녁 먹지 않고 이렇게 추운데 팽이만 치느냐?”

“아빠가 저녁 먹지 말고 밖에서 벌서고 있으래요. 그런 걸 팽이 치러 도망 왔어요.”

그러면서 또 팽이를 몇 번 두들겨 팼습니다. 마치 그것이 제 아빠나 되는 것처럼.......

“그런데 너 팽이 엄청 잘 치는구나. 팽이 선수권대회에 나가면 최우수상 받겠다. 아저씨도 한 번 치고 싶은데......도와주겠니?”

칭찬을 듣더니 얼굴이 밝아지고 미소가 살짝 흘렀갔습니다.

“아저씨도 팽이선수였어요?”

“선수인가 아닌가 잘 봐라, 응?”

그리고는 팽이채로 몇 번 내리쳤습니다. 허지만 그 아이보다 잘 치지는 않았습니다. 자존심을 살려내야 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얘, 너 예수님 이야기 어디서 들어 보았니?”

“교회 댕기는 친구한테 들었어요. 십자가에 달려 죽은 사람이라구요.”

“어이구, 잘 아는구나. 그런데 그 예수님도 팽이처럼 채찍 맞은 것도 말해 주던?”

“그럼요, 몇 사람이 얼굴에다 침도 탁 뱉고, 손가락만한 가시로 된 모자도 씌웠담서요?”

“맞았다, 맞았어. 그러니 그 예수님이 바로 팽이였잖아. 그리구우 또 하나 있다.”

“뭔데요?”

나 예수를 올려다보는 그 아이의 눈동자가 반짝반짝 빛나기 시작했고 귀도 쫑긋 세웠습니다.

“너도 팽이라 이 말이다. 아빠한테 꾸중 듣고 벌 많이 설수록 팽팽팽팽 잘 돌아가는 저 팽이, 그게 바로 너란다.”

그렇게 한 수 가르쳐주며 나 예수는 속으로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이 아이가, ‘고난당하는 것이 내게 유익이라’는 시편 말씀(119:71)을 평생 꼭 붙잡고 살아갔으면 하는 기도입니다.

“아저씨 정말 고맙습니다. 집에 돌아가서 아빠에게도 고맙다고 말씀 드리겠어요. 사실은 집에 불지르고 도망갈 궁리를 할 때 아저씨를 만났어요.”

그 때 시베리아 겨울바람이 한 번 더 윙 하고 몰아쳤습니다. 그러나 나 예수에게는 그것이 따스한 봄바람으로 느껴졌습니다. 그리고 그 아이 마음에도 훈훈한 봄바람이 되었습니다.

이정근 목사(원수사랑재단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