道를 아십니까?… 두 남자 따라가봤더니
입력 2011-07-06 17:58
두 남자와 눈이 마주쳤다. 그들은 거리에서 행인을 살피고 있었다. 접근 대상을 물색 중인 듯했다. 기자는 선택됐다. ‘저 사람!’ 하는 눈빛이 그들에게서 읽혔다. 다가왔다. 젊은 남자가 말을 걸었다.
“수도하는 사람인데 복 많다는 소리 안 들어보셨어요?” 그들이 누군지 알려주는 첫마디였다. 질문은 꼬리를 물었다. “무슨 띠세요? 직장 다니시고? 잘되세요? 결혼은 안 하셨나 봐요. 만나는 인연은 있고?” ‘예’ ‘아니요’로 답했다. 대화는 약 2시간 동안 이어졌다. 지난 1일 낮 서울 종로에서였다.
접근
남자들은 반팔 와이셔츠와 검정 정장 바지를 입고 있었다. 얼굴과 팔은 그을렸고 피부가 거칠었다. 30대 중반, 40대 초반으로 보였다. 말은 30대 남자가 했다. 40대 남자는 옆에서 미소만 지었다.
“아니, 보면 복이 참 많은데 많이 놓치고 가네요. 집에서 장남 역할 좀 안 하세요.” 장남이라고 대답했다. “기둥 역할을 하셔야 할 분인데. 보면 조상님들이 많은 공을 들여 놨어요. 그래서 누구보다 잘될 분이에요. 원래는 직장에 있을 분도 아니에요. 기운 자체가 ‘내 일’을 하셔야 할 분이신데.”
길 한복판이었다. 행인들은 소곤대며 웃었다. 대화 내용을 안다는 표정이었다. 남자는 계속 말했다. “일이 잘 맞으신가요. 원래 재물 복도 없는 분이 아니거든요. 근데 어떤 기운이 그걸 깨뜨리고 밀어내 버려요. 중요한 사실은 그 원인조차 모르고 살아가신다는 거예요. 혹시 콜라 한 잔 베풀 수 있으세요.”
원인을 알려주겠다는 남자는 돈이 없다고 했다. “저희는 수도하는 사람들이라.” 남자는 인연을 강조했다. 즉답을 피한 기자에게 그가 말했다. “돈 달라, 복채 달라 할 거 아니니까 콜라 한 잔만.”
인근 빵집으로 옮겼다. 걸어가면서 칭찬을 늘어놨다. “제가 보면 재주도 참 많고 머리도 상당히 좋으시네요. 학교 다닐 때 공부 잘하지 않으셨어요.” 근거는 알 수 없었다. 그러다 물었다. “직장에 계속 있으실 거예요. 나와서 사업 준비 안 하시나요.” 직장 그만두고 사업해야 한다는 말로 들렸다.
탐색
커피 세 잔을 주문했다. 남자는 꿈 얘기를 꺼냈다. “평상시 꿈은 자주 안 꾸세요.” 개꿈만 종종 꾼다고 했다. “해몽을 못하시는 건 아니고요. 최근엔 어떤 꿈을 꾸셨어요?” 기억나는 꿈은 없었다.
남자는 질문을 틀었다. “일적인 면에서는 잘되세요. 마음 자체는 굉장히 선하신데 뭔가 감정 기복도 심한 게 느껴져요. 화기도 많이 올라오시고.” 이제 관상 이야기다. “혹시 사주나 관상 같은 거 보신 적 있어요.” 없다고 하니 종교를 묻는다. 교회에 나간다고 했다. “종교에 빠질 분은 아닌데.”
남자는 기자에게 ‘도화살’이 있다고 했다. 뜻을 물었다. “사람을 이렇게 끌어들이는 기운도 있는데 밀어내는 기운도 같이 갖고 계세요. 비유하자면 장미 같아요.” 그림으로 설명했다. 도화살이 좋은 것을 밀어내는 기운이라는 해설이었다. ‘재앙을 부르는 바람기’ 정도로 풀이되는 본뜻과 멀어 보였다.
하려는 말은 하나인 듯했다. “그래서 사람하고 부딪치고 일과 재물이 마음처럼 안 돼요.” 남자는 이름과 생년월일을 물었다. 자신의 오른손을 잠시 들여다보고 말했다. “창욱씨는 집안에 공덕이 엄청 많네요.” 그 공덕을 못 받고 있다는 게 요지였다. 이승을 떠도는 조상이 가로막는 탓이라고 했다.
“칠성당이라고 들어보셨어요. 교회에서 말하는 천국이에요. 인체는 부모님이 주시지만 영혼은 칠성당에서 이 땅으로 와요. 그래서 임신이라고 하잖아요. 신이 뱃속에 임했다는 뜻이고.” 임신의 ‘신’이 그 신이냐고 세 번 물었다. “예, 귀신 신(神)이에요.” 틀린 말이었다. 임신은 아이 밸 신(娠)을 쓴다.
본론
남자는 이승의 조상을 칠성당에 올려 보내야 한다고 했다. 그들은 춥고 배고픈 영혼으로 묘사됐다. “집안에 머리 쪽으로 돌아가신 분 안 계세요. 치매랄까, 뇌출혈이랄까, 고혈압.” 질문은 범위가 모호했다. 없는 걸로 안다고 대답했다. 남자는 “집안 내력을 자세히 알고 계신 분이냐”고 되물었다.
답답해하는 눈치였다. 그는 “할아버지가 단명하지 않았느냐. 꿈에 나타난 적은 없느냐”고 물었다. 해당 사항이 없었다. 남자는 말했다. “본인은 이렇게 돌아가신 분들을 잘 모르겠지만 지금 도와달라고 가까이 찾아와 있어요.” 이야기는 정해진 대로 흘러가는 듯했다. 기자의 대답은 들러리 같았다.
남자는 앞서 물었었다. “조상 중에 절에 다닌 분 안 계신가요.” 불교가 민간에 뿌리내렸던 나라에서 대답이 빤한 물음이었다. 남자의 질문과 설명은 대개 이런 식이었다. 긍정할 확률이 높게 말했다.
남자는 하늘 문을 여는 제사가 있다고 했다. 제사를 지내면 조상이 천국에 가서 기자가 잘된다는 논리였다. 일종의 천도재다. 그는 ‘정성’이라고 표현했다. 그 일을 할 사람이 집안에 기자뿐이라고 남자는 강조했다. “옛날에 씨받이라는 게 있었잖아요. 이 세상, 이때에 (하늘) 문을 열어야 할 사람을 나타내기 위해서 그렇게 어렵게 씨받이를 했던 거예요.” 씨받이가 천도재를 위해 존재했다는 말이었다.
천도재 방법은 이렇단다. 하늘의 기운이 흐르는 곳에 간다. 제사상을 차려 절한다. 경문, 이름, 생년월일을 한지에 적는다. 한지를 말아 왼손 손금 위에서 절반쯤 태운다. 21일간 조상을 위해 빈다.
질문
종이는 왜 손바닥 위에서 태울까. “아기들 태어나면 이렇게 도리도리 하잖아요.” 남자는 오른 검지로 왼손바닥 한가운데를 찍어 보였다. 어색했다. ‘도리도리’는 고개를 흔들며 하는 말이기 때문이다.
왼손에 하는 이유를 물었다. “왼손 안에 하늘의 문을 열 수 있는 열쇠가 있어요. 그래서 그런 말이 있잖아요.” 그는 왼손을 내밀며 말했다. “이 손 안에 있소이다.” 출처를 알 수 없는 말이었다. 남자는 확신에 차 있었다. 원래 왼손으로 하는 말이냐고 물었다. 남자는 ‘암, 당연하지’라는 표정이었다.
하늘의 기운이 흐르는 곳이란 어딜까. “(경기도 고양시) 원당 아시나요. 원래는 삼척에 저희가 공부하는 곳이 있는데 잠깐 나와 있어요. 삼척이 너무 멀잖아요.” 설명대로라면 서울 지하철 3호선 원당역에서 마을버스로 5분 거리에 있다. 5층 건물 가운데 5층이다. 남자는 그곳을 ‘선방’이라고 했다.
천도재를 지내면 만사가 잘될까. 남자는 한발 물러섰다. “그게 아니고요. 본인이 바뀌는 거예요. 내 기운이 바뀌면 주변 기운이 바뀌게 돼 있어요. 세상은 내 마음 따라 보이게 돼 있거든요.” 조심스러운 만큼 무책임한 말이었다. 그는 재물복도 장담하지 못했다. 받을 게 있으면 받는다는 식이었다.
어느 나라에서나 적용되는 법칙일까. “미국은 조상을 모르잖아요. 근데 그렇다고 본인이 미국인은 아니잖아요.” 국적을 바꾸면. “그래도 한국인이죠. 하늘의 법으론 한국인으로 태어난 거잖아요.” 한 번 더 물었다. “혼혈은요?” 침묵이 깔렸다. “제가 하늘의 뜻을 거기까진 잘 모르겠네요, 솔직히.”
정체
준비된 설명은 끝난 듯했다. 선방에 데려가는 일만 남은 것이었다. ‘백문이 불여일견’ ‘장맛도 찍어 봐야 맛을 안다’ ‘믿을 건 사람뿐’ ‘속는 셈 치고’ 등의 말로 설득하려고 했다. 소속된 단체의 이름은 알려주지 않았다. “종교라고 한정지을 수 없어요.” 몇몇 종교의 이름을 거론하자 말을 돌렸다.
“가서 돈 내야 해요?” 남자는 돈 얘길 하지 않기로 했었다. “원래 정성 드리는 거는 100만원 정도 들어요. 그런데 이 정도 비용 있으세요.” 그는 10만원을 요구했다. 비싸다고 버티니 가격은 내려갔다. “그냥 5만원 정도는 있으세요?” 돈은 낼 수 없다고 잘라 말했다. 지루한 대화가 오갔다.
남자는 지쳐 보였다. “정성 드릴 마음 전혀 없으시고요?” 그는 눈치를 살피다 맥 빠진 목소리로 말했다. “먼저 일어나겠습니다.” 씁쓸해 보였다. 거리에서 그들은 다시 행인의 얼굴을 살피고 있었다.
김상근 연세대 신학과 교수는 “어느 시대에나 사회 모순과 안전망이 깨질 때 종교를 표방한 집단이 속출한다”며 “관상과 사주처럼 불안감을 분산하는 시도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신광영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는 “예측 불가능한 현실에서 탈피하고 싶은 본능의 발로”라며 “불안정한 삶은 구조적 문제인 경우가 많은데 개개인은 원인을 자신에게서 찾다 유사 종교에 빠지기도 한다”고 말했다.
글 강창욱 기자·사진 신웅수 대학생기자 kcw@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