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아원 소년들 꿈을 쏘다… 경남 고성 사회복지사 박철우씨가 꾸는 ‘맨발의 꿈’
입력 2011-06-30 21:21
‘다크’(13·가명)가 집을 나갔다. 아이는 갈 곳이 없다. 오락실도 가 보고, 이 골목 저 골목 기웃거려도 봤다. 해질녘 다른 아이들은 엄마 아빠가 찾으러 다니지만 이 아이는 아니다. 다크는 공중전화기 앞에 섰다. 경남 고성의 고아원 ‘보리수동산’ 사회복지사에게 전화를 걸었다. 나를 찾아와 달라고, 축구하고 싶다고 말하려던 참이었다. 신호음이 길게 울렸는데 받는 이가 없었다.
다크는 두 시간의 짧은 가출을 끝내고 집으로 돌아갔다. 아이의 집은 경남 김해의 고아원이다. 다크가 사라진 사이 고아원에선 한바탕 소동이 벌어졌다. 축구 때문이야, 축구가 애를 들쑤셔 놓은 거야, 이런저런 소리가 들렸다. 다크는 그날 밤 베개에 얼굴을 묻었다. 베개가 젖었다.
다크의 가출은 보건복지부장관배 ‘꿈나무축구대회’에 나가지 못하게 한 아버지(고아원 원장)에게 화가 나서였다. 꿈나무축구대회는 전국 고아원 소년들의 축제다. 2009년 여름 이 대회에 참가한 다크는 팀의 다크호스였다. 눈 밑에 다크 서클이 생길 정도로 연습을 열심히 해 ‘다크’란 별명이 생겼다. 생애 처음 ‘경남 대표’란 타이틀을 안고 출전했던 기억은 열세 살 인생에 가장 특별한 추억이다.
지난해 여름, 1년간 기다렸던 대회에 나갈 수 없게 됐다. 고아원에서 나보다 축구 잘하는 아이는 없는데, 아버지가 다른 아이들을 대표팀 합숙장소인 보리수동산에 선수로 보냈다. 다크는 떼를 썼다. “저, 보리수동산에 보내주세요. 거기 살면서 축구할래요.” 자신이 선택한 것도 아닌데 고아원에서 자라야 했던 아이는 처음으로 어떤 ‘선택’을 하고 싶었다. 하지만 다크에겐 고아원을 선택할 권리가 없다. 할 수 있는 건 짧은 가출뿐이었다.
경남 고아원 일대에 이 소문은 빠르게 전달됐다. 보리수동산의 사회복지사가 애들에게 바람을 넣는다는 것이다. 경남의 고아원 24곳 중 서너 곳만 선수를 보내줬다. 축구라곤 해본 적 없는 아이들이 10여명 모였다.
“작년에 다크란 애가 있었다. 가는(걔는) 마 눈 밑이 새카매 질 정도로 운동장을 뛰는 기라. 니네도 다크처럼 남들 한 발 뛸 때 두 발 뛰야 된다.” 보리수동산 사회복지사이자 꿈나무축구대회 경남대표팀 감독인 박철우(49)씨가 말했다.
‘전설의 다크’는 그렇게 잊혀졌다. 지난해 무더웠던 여름도 그렇게 가고 있었다.
누구에게나 찬란한
박철우 감독은 힘이 빠졌다. 경기도 꿈나무축구팀은 예산이 2억원이라는데, 다른 지역은 지난해 활약한 선수가 다음해도 출전하는데 경남의 고아원은 해마다 새로운 아이를 선수로 보내온다. 선수 선발 방식도 다르다. 감독이 고아원을 돌아다니며 우수한 선수를 선발하는데, 박 감독은 고아원에서 보내는 아이들을 훈련시킬 뿐이다. 축구선수 출신 감독이 아니라서, 사회복지사인 자신을 경계해서 그러는 건지 박 감독은 고민에 빠졌다.
“아무리 봐도 9명밖에 없어. 휴.” 아이들이 공 갖고 노는 모습을 박 감독은 멀리서 쳐다본다. 11명 주전을 선발해야 하는데 아무리 양보해도 주전으로 뛸 애는 9명이다. 나머지는 타고난 ‘몸치’였다. 축구화 신은 발이 아프다며 한 아이가 감독에게 발을 내민다. 감독은 큰 발을 작은 축구화에 넣어 톡톡 땅바닥을 친다. “이라믄 신발이 좀 커지거든. 안 아프다.” 또 다른 아이, 관심 받고 싶은지 발을 내민다. “아파요.” 박씨가 발을 만져줬다. “괜찮재?” 사실 꾀병인 거, 박 감독도 다 안다.
아이들을 15인승 노란 봉고차에 태웠다. 오랜만에 여행을 떠나는 아이들은 승합차 창문 밖으로 작은 머리를 하나둘 내민다. 버스가 달려 도착한 곳은 거제도 몽돌해수욕장. 박씨가 직접 텐트를 치고 ‘즉석 카레’를 만들었다. 바닷가에 첨벙 뛰어든 아이들은 그래도 즐겁다. 2004년부터 보리수동산 아이들에게 축구를 가르친 박씨는 이제 텐트 치는 게 익숙하다. 원정경기를 떠날 때마다 텐트를 치거나 비가 올 때면 경로당을 빌렸다. 아이들이 자장면 한 그릇씩만 먹어도 7만원은 훌쩍 나갔다. 박 감독은 꿈나무축구대회 경남대표팀 감독이면서 프로축구단 경남FC 산하의 중학생 축구팀 ‘동고성FC’도 맡고 있다. 이 팀 역시 고아원과 저소득층 아이들이 주축인데 그는 월급을 받지 않는다.
“제가 (경남FC에) 월급 안 받겠다 했어요. 사회복지사 월급 200만원 받는데 얼마나 많아요? 대신 애들 유니폼 좀 더 달라 했지요. (이 일을 하면) 제가 재밌잖아요. 어디 가서도 큰소리 칠 수 있고. 어떤 감독은 선수 팔아먹는다, 욕도 할 수 있고. 돈 없이도 행복하게 살 수 있어요.”
즐거운 훈련만 하는 건 아니다. 지옥의 훈련 코스도 있다. 벽 잡고 무릎을 허리까지 올려 뛰기, 엎드려뻗친 상태에서 뛰기를 25분씩 두 번 시킨다. 30분이 지나면서 초등학생들 얼굴에 비가 쏟아진다. “흑, 흑, 하악, 하악” 한 아이가 터져 나오는 울음을 억지로 참자 눈물이 전염돼 버렸다. “인규야, 세 번만 더 하자. 넌 할 수 있어!” 훈련장은 눈물로, 헉헉, 숨소리로 가득 찼다. 누가 먼저였는지 모르지만 아이들이 한목소리로 외친다. “열심히 하고, 열심히 하자. 경남, 경남 파이팅!” 감독도 외쳤다. “상대는 이미 지쳤다. 한발만 더!” 50분이 지나자 애들이 모두 바닥에 쓰러졌다. 낙오자는 없었다. 살면서 누구에게나 고비가 있지만 노력하면 뛰어 넘을 수 있다는 것, 그게 이 훈련의 가치다. 아이들은 지치면서도 자랑스러운 표정을 짓는다.
축구대회가 열리기 전 충북팀과 연습경기를 벌인다. 이쪽은 오합지졸인데 저쪽은 뭔가 군기가 잡혔다. 박 감독은 축구선수를 해본 적이 없다. 운동이 좋아 애들을 가르쳤고 2년전 한국유소년축구교육원에서 3급 자격증을 땄다. 충북팀은 감독이 선수 출신이다. 시합이 열리자 상대팀 코치가 경기장에 들어와 못하는 아이의 머리를 때리거나 발로 찬다. 결과는 경남팀의 승리. 아이들이 웃으면서도 속닥거린다. “저 팀 애들, 맞으면서 하는 거 봤나? 불쌍하다. 맞재? 머리 맞으면 뇌세포 터져서 머리 안 좋아진다든데.”
포기는 없다
결전의 순간이 다가왔다. 지난해 8월 18일 전남 목포에서 열린 꿈나무 축구대회. 2009년 4위였던 경남팀은 ‘죽음의 조’에 속했다. 그런데 첫날부터 강원도와 붙어 크게 패했다. 경기를 끝낸 아이들이 기숙사에 들어왔는데 다들 웃고 떠들고 장난치기 바쁘다. 박 감독은 슬슬 화가 났다. 처음으로 버럭 소리를 질렀다.
“거울을 쳐다 봐. 거울이 너네한테 뭘 이야기하는지. 너네는 열심히 해야 돼. (고아원) 나간 형아들이 왜 포기하는지, 포기하면 어떤 결과가 오는지 잘 생각해 봐. 왜 우리는 졌나, 땅바닥을 치면서 울기도 하고 승부욕도 있고 눈물이 쏟아져야 돼. 져고(지고) 져고 져고 계속 져고 그 속에서 배우지 않으면 가치가 없어. 가난이, 유전적인 문제도 있지만, 노력 안한 책임도 있어. 다른 사람들이 너거 보는 동정과 배려, 그걸 바탕으로 삼아서 이빨을 앙다물고 살아야 되는 거야. 가! 꽈자 사달라고 하고, (고아)원에 있는 누나들한테 하듯이 그런 행동이나 해!”
아이들이 슬금슬금 하나둘 나갔다. 감독 혼자 남았다. 그런데 이 남자, 운다. 흐르는 눈물을 옷으로 닦았다. 화를 낸 뒤 밀려오는 미안함, 아이들에 대한 섭섭함, 패배한 것에 대한 분함… 눈물은 복잡하게 흘렀다.
“동물원이랑 비슷해요. 나는 시설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다 알거든요. 시설 애들은 쪼금만 아프면 참으라 안 하고, 사고 날까봐 주사 맞추기 바빠요. 과잉보호하고. (고아)원에서 나가서 희귀하게 잘된 사람도 있지만, 대부분 애들이 뭐든 ‘안 해요, 못해요’란 말을 해요. 복지사들은 그럼 애들을 달래기 바쁘죠. 그렇게 아무것도 못해요. (빈곤이) 대물림돼요. 축구 선수 안 되면 어때요? 땀의 가치를 배우라는 건데.”
박 감독도 영세민 가정에서 태어났다. 자전거 공장에 취직해선 노동 운동을 했고 일을 주지 않는 회사에 반발하거나 실직한 동료를 위해 단식투쟁을 하다 검찰에 고발당하기를 반복했다. 3년 만에 공장에서 잘렸다. 그리곤 이 일 저 일 막노동을 하다 2002년에 고아원 사회복지사가 됐다. 지금은 고추, 쌀농사를 짓는 농부이자 사회복지사이고 축구감독이다.
경남팀은 1승 1무 1패로 예선 탈락했다. 비록 경기에 졌지만 아이들은 축구가 계속하고 싶다. 경기가 끝난 마지막 날, 아이들과 작별해야 한다. “너거가 최선을 다했듯 감독도 약속을 지킨다. 너거가 원하는 축구, 앞으로 좋은 데서 훈련할 수 있도록 할게. 뭘 하든 혼을 담는 사람이 돼라.”
인규가 울자 근한이도 따라 운다. 아이들이 가방 들고 떠나는 감독의 뒷모습을 보고 손을 흔든다. “안 돌아볼라꼬. 애들한테 뭘 주는 게 아니라 패배만 심어주는 것 같아서. 일반 아동도 아니고, 마음 안 좋죠. 저도 이 대회 통해서 많이 배웠겠죠.” 이 남자, 또 운다. 이들은 이후로 만날 수 없었다.
다시 만난 ‘다크’
박 감독은 꿈이 있다고 했다. 고아원과 저소득층 아이들을 위한 ‘꿈의 축구팀’을 만드는 거다. 하지만 여건상 힘들다. 박 감독의 ‘동고성FC’도 사실상 해체됐다. 보리수동산과 저소득층 중학생이 주축인 팀인데 선수들이 고등학생이 됐다.
더 큰 문제는 다른 고아원에서 아이들을 축구팀에 보내지 않는다는 것. 함께 뛸 선수가 없는 보리수동산의 신민규(15)군은 미래의 박지성을 꿈꾸며 오늘도 혼자 훈련한다. 매일 새벽 6시에 일어나 오후 9시까지 수업시간을 제외하곤 늘 연습이다. 민규는 요즘 우는 날이 많아졌다. 경남FC가 후원하는 진주고등학교 축구팀에 가고 싶은데 쉽지 않단다.
박 감독이 말했다. “서울 성지고, 통영고, 고성고에서도 민규 오라하는데 진주고는… 내가 진주고에 전화해서 말도 해봤어요. 매월 내야 하는 30만원 회비가 없지만, 내가 지은 최고 좋은 쌀 30만원어치 주겠다고.”
경남 고성군 개천면에 있는 보리수동산에서 지난 27일 민규를 만났다. 초등학교 5학년 때까지 같은 반 아이들을 때려 친한 친구가 없었다는 민규는 요즘 학교에서 축구 스타다. 그래도 가끔 보리수동산에서 만나기로 해놓고 나타나지 않는 친구 때문에 시무룩할 때도 있단다. 어떤 엄마들은 보리수동산에 못 가게 막는다고 했다.
“저는 부모님 안 좋게 만나 가지고, 축구하려면 돈이 있어야 한다, 그런 얘기 나오면 슬퍼요. 지금 주말마다 진주에 있는 진짜 엘리트만 모인 팀에 가서 훈련하는데요. 그 애들은 20만원씩 내는데 저는 돈 안 내니까요. 그 애들은 매일 훈련하는데 저는 거리도 있고 매일 못 가니까 미안하고. 여기서 매일 더 연습해요. 제가 골 넣으면 미안한 게 없어지니까. 며칠 전에요, 경기 있었는데 1-0으로 지고 있었거든요. 제가 두 골 넣어서 우리 팀이 이겼어요. 와∼ 진짜 기분 좋데요. 저도 울고 애들도 다 울고.” 민규는 이곳 동생들에게 성공한, 멋진 형이 되고 싶다고 했다.
28일 이 아이들의 축구 스토리를 카메라에 담고 있는 임유철(38) 다큐멘터리 영화감독과 다크가 있는 김해의 고아원을 찾았다. 다크를 만나는 과정은 쉽지 않았다. 지난해 꿈나무축구대회에 출전했던 아이들이 임 감독을 보고 와락 안겼다. “어, 안 올 줄 알았어요. 계속 기다렸는데. 약속 안 지킬 줄 알았어요.” 아이들은 원래 약속을 잘 믿지 않는다.
학원에서 도망쳐 이날도 오락실에 들른 ‘다크’는 원장에게 혼이 나고 있었다. 원장은 다크가 거짓말을 하는 게 안타까웠다. 다크가 운동보다 공부에 열중하길 원했던 원장은 이제부터 다크가 원하는 축구를 할 수 있게 적극 도와주겠다고 했다. 옆에 있던 다크, 말은 없어도 눈빛이 반짝인다.
-그때 박 감독님에게 왜 전화한 거야?
“보고 싶다고요. 나 보러 와 달라고요. 세 번 전화했어요. 한 번 울었어요.”
미래의 박주영 선수를 꿈꾸는 다크의 책상에는 빨간 축구 유니폼을 입은 한 남자가 그러져 있었다. 자신의 미래를 그린 것이다.
이날 경남FC는 지난해 약속했다가 연기했던 ‘저소득층 유소년 축구팀’을 만들자고 박 감독에게 연락해왔다. 이 모든 과정을 카메라에 담은 임유철 영화감독도 경남 고아원 아이들의 축구 이야기를 계속 촬영할 예정이다. 2006년 다큐멘터리 영화 ‘비상’으로 관객 4만여명을 모은 임 감독은 2007년 부산 영화평론가협회상 심사위원 특별상을 수상했다. ‘누구에게나 찬란한’이란 제목이 붙을 이 영화는 내년 또는 내후년쯤 개봉될 예정이다. 아이들의 꿈은 이뤄질 수 있을까.
부산·김해·고성=박유리 기자 nopimula@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