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가수’와 게임의 룰… 김연우는 억울하다?

입력 2011-06-30 18:14


MBC 프로그램 ‘나는 가수다’(이하 ‘나가수’)가 출연 가수와 그들의 노래 말고도 여러 가지 화제로 연일 신문과 방송, 인터넷을 떠들썩하게 만들고 있다. 재미있는 얘기들이 너무 많아 별로 주목받지 못하는 얘기 중 하나가 중간에 바뀐 청중평가단의 투표방식이다. 탈락에 관한 경기규칙을 마음대로 바꿨다고 해서 연출자가 교체된 걸 생각하면, 왜 이 문제는 그냥 조용히 넘어가는 건지 궁금해진다. 아마도 이건 그리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투표와 집계 방식의 변화는 농구 경기에서 골대 높이를 바꾸거나 축구 경기에서 반칙 규정을 바꾸는 것처럼 승패(‘나가수’에서는 순위)에 큰 영향을 주게 된다. 이 문제가 실제로 얼마나 민감한 것인지는 우리 국회가 몇 년에 한 번씩 선거제도 개편 문제로 홍역을 치르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이론적으로도, 이런 문제를 직접 다루는 정치학은 물론이고 넓게는 사회과학 전반에 걸친 근본적인 문제의 하나이기도 하다.

‘나가수’가 처음 택한 투표방식은 500명 청중평가단이 7명의 가수 중 한 사람에게 투표하고, 그 결과를 집계해 등수를 정하는 형태였다. 그러다 한 달간 휴지기를 거치고 난 뒤 새롭게 채택한 것이 ‘1인 3표제’다. 정치학에서 선거와 투표 제도를 연구하는 사람들의 표현을 빌자면 ‘소선거구-단기(單記)’ 방식이던 것이 7명 중 3명을 뽑는 ‘중선거구-연기(連記)’ 방식으로 바뀐 것이다.

대통령이 바뀌었으니 헌법도 바꾸자는 식으로 새 연출자가 들어서면서 슬쩍 바꿔버렸고, 그에 대해 이렇다 할 설명이 없었다. 새 투표방식으로 제작된 프로그램이 방영되기 며칠 전 기자들과 만난 연출자는 “음악적 다양성을 존중하고 평가단의 의견을 보다 명확하게 반영하기 위해” “선택권을 확대해 보다 공정한 결과를 얻어내기 위해” 바꿨다고 했다. 말 그대로라면 참 좋은 의도인데, 과연 그럴까?

새 투표방식이 기존 것과 큰 차이가 없거나 더 나은 것이라면 모르겠지만 내가 보기에는 그렇지 않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두 방식은 상당히 다른 결과를 내놓는다. 청중평가단이 어떻게 투표하고 그걸 어떻게 집계하는가에 따라 가수들의 순위가 바뀌게 돼 있다. 누가 이 무대를 떠나야 하는지, 투표방식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다.

이런 문제를 따져보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는데, 여기서는 ‘나가수’의 투표와 집계 방식을 그대로 재현하는 시뮬레이션(가상실험모형)을 해보자. 먼저 청중평가단 한 사람 한 사람이 가수 7명에게 갖는 선호도를 ‘그림 1’처럼 점수로 설정한다. 예를 들면, ‘청중평가단 1’은 ‘가수 1’부터 ‘가수 7’까지 각각 26, 51, 66, 39, 27, 74, 44점(이 점수들은 1∼100점 사이의 균일분포 안에서 무작위로 추출된 것이다)의 선호도를 가지고 있는 것으로 설정된다. 청중평가단 1이 가장 선호하는 가수는 74점의 가수 6이다.

가장 큰 감동을 준 가수 1명만 적어 내던 기존 투표 방식대로라면 청중평가단 1의 ‘한 표’는 가수 6에게 간다. 나머지 여섯은 모두 표를 받지 못한다. 이 평가단이 2위 점수를 준 가수 3이나 꼴등 점수를 준 가수 1이 똑같이 취급된다.

하지만 ‘1인 3표’ 방식이라면 청중평가단 1이 1∼3위 점수를 준 가수 6, 가수 3, 가수 2에게 표가 돌아가고, 나머지 네 명은 표를 받지 못한다. 가수 6이 표를 받긴 하지만 ‘1인 1표제’만큼 무게가 실리지는 못하는 반면, 가수 3과 가수 2는 가수 6과 똑같은 무게의 표를 얻는다.

이렇게 청중평가단 500명이 가수들에게 준 점수를 무작위로 설정한 뒤 1인 1표와 1인 3표 두 방식으로 집계해 등수를 내보니 ‘그림 2’와 같았다. 1인 1표에선 1등을 한 가수 1이 1인 3표에선 2등이었고, 1인 3표로 1등에 오른 가수 4는 1인 1표에선 4등에 불과했다. 6등과 7등을 제외한 모든 등수가 투표 및 집계 방식에 따라 바뀌었다.

이쯤 되면 짐작하겠지만, 1인 3표에선 등수를 결정하는 데 1등 투표수만이 아니라 2등과 3등 투표수가 큰 역할을 하게 된다. 84명으로부터 1등 점수를 받았던 가수 1은 63명과 75명으로부터 각각 2등과 3등으로 뽑힌다. 반면에 73명에게 1등 점수를 받았던 가수 4는 75명과 80명에게 각각 2등과 3등으로 뽑힌다. 따라서 세 숫자를 그대로 합하는 집계방식을 적용하면 가수 4는 228표, 가수 1은 222표를 얻게 되고, 따라서 가수 4가 1위가 된다. 가상실험의 횟수를 늘리면 이보다 더 극적인 반전도 얼마든지 나올 수 있다.

어느 방식을 선택하든, 한편으로는 투표와 집계 방식이라는 제도 문제가, 다른 한편으로는 선호도의 분포 문제가 서로 맞물려 돌아가면서 최종 결과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따라서 누가 승자이고 누가 패자인지는 규칙이 정하는 바에 따라 결정되는 가변적인 것이고, 다분히 자의적인 것이다. 어느 방식이 더 공정한지, 평가단의 의견을 더 명확하게 반영하는지 가려내는 건 불가능할 뿐 아니라 무의미하다.

한나라당 대표 선출 과정에서 선거인단을 몇 명으로 할지, 여론조사를 몇 %나 반영할지 갑론을박 하더니 급기야 법원에서 경선 규칙의 정당성을 판단해줘야 했다. 그 판단은 절차적 합법성에 관한 것이지, 공정성이나 대표성에 관한 것은 아니다. 이렇게 보면 정말 중요한 것은 무엇을 가지고 어떻게 승자와 패자로 나눌지 정하는 ‘게임의 룰’이다. 규칙이 결과를 좌우하는 거라면 그것이 국회의원 선거든, 대학입시든, ‘나가수’든 어떤 경쟁에서도 승패는 실력을 입증하는 절대적 기준일 수 없다. 김연우씨, 그러니까 너무 마음 상해하지 마세요.

한신갑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