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몸들 ‘알콩달콩’ 손잡으니 다이아몬드… 다 내려놓고 떠날까 ‘섬들의 고향’ 신안으로

입력 2011-06-29 17:33


대한민국 지도를 간략하게 그릴 때 늘 빼먹어 섭섭한 섬이 있다. 자은도 암태도 팔금도 안좌도 장산도 하의도 도초도 비금도 등 전남 신안 앞바다의 크고 작은 섬들이다. 섬이 천개가 넘어 ‘천사의 섬’으로 불리는 신안에서도 이 섬들은 마름모꼴을 형성해 다이아몬드 제도로 불린다. 그 중에서도 연도교로 연결된 자은도 암태도 팔금도 안좌도는 때묻지 않은 순수한 자연을 간직하고 있어 화장하지 않은 섬처녀처럼 청초한 모습이다.

목포여객선터미널을 출발한 철부선(쇠로 만든 짐배)이 호수처럼 잔잔한 바다를 달려 도착한 곳은 안좌도의 읍동선착장. 양파 실은 대형트럭들이 철부선을 타기 위해 줄지어 선 선착장을 비롯해 안좌읍내의 건물들은 시멘트 담장을 캔버스 삼아 푸른색 벽화로 단장되어 있다. 한국추상미술의 선구자인 김환기(1913∼74) 선생의 고향마을답게 벽화는 대부분 추상화이다.

안좌도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을 보낸 김환기 선생은 뉴욕 생활 중 김광섭 시인의 시 ‘저녁에’를 모티브로 대표작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를 그렸다. 그리운 사람들이 생각날 때마다 푸른 바탕에 검은 점 하나씩을 찍은 추상화로 안좌도의 푸른 바다와 밤하늘을 연상시킨다. 백두산 나무로 지었다는 기와집 생가는 보존상태가 좋아 미술학도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명소.

안좌도의 두리선착장에서 부속섬인 박지도와 반월도를 ‘V’자로 연결하는 1462m 길이의 인도교는 해돋이와 해넘이를 감상하기 좋은 곳이다. ‘천사의 다리’라는 낭만적 이름이 붙은 목교는 물이 빠지면 짱뚱어 등 온갖 갯벌 생명을 관찰하는 갯벌체험장이 된다.

새처럼 생긴 금당산(130m)을 중심으로 8개의 부속섬을 거느리고 있는 팔금도는 안좌도와 다리 하나로 연결되어 있다. 주변에 흩어진 작은 섬들 사이의 갯벌을 간척한 팔금도는 논과 밭이 많아 섬이라는 사실이 믿기지 않는다. 팔금도에서 다시 연도교를 건너면 일제강점기 시절에 소작쟁의로 유명했던 암태도가 나온다.

암태도는 돌이 많고 바위가 병풍처럼 섬을 둘러싸고 있어 붙여진 이름. 본래 쌀 한 톨 구경하기 힘든 척박한 땅이었으나 마명방조제를 쌓아 드넓은 갯벌이 옥토로 바뀌자 섬 주민들은 소작농으로 전락했다. 1920년대에 일제의 저미가정책으로 지주의 수익이 감소하자 목포 지주 문재철은 암태도에서 무려 7∼8할의 소작료를 징수하기로 했다. 이에 서태석을 중심으로 한 소작인들이 들고 일어나 소작료를 4할로 내려줄 것을 요청하며 1년 동안 소작쟁의를 벌였다.

모내기가 한창인 암태도의 마명방조제 옆에는 암태도소작인쟁의기념탑이 우뚝 솟아있다. 기념탑 비석에는 소설 ‘암태도’를 쓴 송기숙 선생의 글이 새겨져 있다. 그날의 투쟁을 증거하는 글이다. 죽을 때도 벼 한 움큼을 쥐고 있었다는 서태석의 집은 세월의 무게 탓에 폐가로 전락해 안타까움을 더한다.

자은도와 팔금도 사이에 위치한 암태도에는 아기자기한 볼거리와 얘깃거리가 풍부하다. 수곡리와 추포리를 잇는 노두는 썰물 때 드러나는 2.5㎞ 길이의 징검다리로 오랜 세월 두 마을을 연결하는 바닷길 구실을 해왔다. 2000년에 바다를 가로지르는 시멘트도로가 생기면서 노두는 추억의 징검다리로 전락했지만 옛 노두의 정취는 여전하다. 인근의 추포해수욕장은 길이 600m, 폭 100m로 수심이 얕고 활처럼 휘어진 백사장 주위로 숲이 울창해 해수욕객들이 많이 찾는다.

암태도는 매향비로도 유명하다. 장고리에서 동쪽으로 2㎞ 떨어진 비석거리에 위치한 매향비는 향나무를 갯벌에 묻었다는 일종의 보물지도로 1405년(조선 태종 5년)에 세워졌다. 뻘 속에 묻은 향나무는 향기가 좋아 매우 비싼 값에 거래된 침향목으로 여말선초에는 이 나무로 여인들의 빗이나 노리개를 만들었다고 한다.

신안의 섬지역에서는 바닷바람을 막고 왜구들로부터 마을을 은폐하기 위해 ‘우실’이라 불리는 독특한 형태의 마을 울타리를 조성했다. 안좌도의 대리마을처럼 우실은 대개 팽나무숲으로 이루어졌다. 그러나 암태도의 송곡마을은 특이하게도 마을 어귀 팽나무가 있던 자리에 높고 견고한 돌담을 쌓았다.

다이아몬드 제도에서도 가장 순수하고 알려지지 않은 섬은 암태도와 연도교로 연결된 자은도이다. 자은도는 자애로우면서도 은혜로운 섬이라는 뜻. 임진왜란 때 명나라 이여송 장군의 참모로 따라왔던 두사춘은 작전에 실패하자 처형당할 것을 우려해 자은도로 숨어들었다. 그리고 난세에도 생명을 보존해준 섬이라는 뜻에서 자은도로 명명했다고 한다.

자은도는 백길해수욕장과 분계해수욕장을 비롯해 15개의 크고 작은 해수욕장이 해변을 따라 줄을 잇는 특이한 섬이다. 백길해수욕장의 광활한 모래밭은 홍해를 벗한 중동의 사막을 연상시킬 정도. 해수욕객들이 가장 많이 찾는 곳은 백길해수욕장과 분계해수욕장.

철새 도래지로 유명한 칠발도 앞에 위치한 분계해수욕장은 노송 군락이 아름답다. 모래에 뿌리를 내린 아름드리 노송은 모래가 바람에 날려가면서 뿌리가 드러나 기괴한 모습을 연출하고 있다. 이 중 여인목이라는 이름이 붙은 노송 한 그루는 늘씬한 미녀가 물구나무를 선 형태로 뭇 남성들의 눈길을 사로잡는다.

자은도 북쪽 둔장마을의 둔장해수욕장은 물이 빠지면 광활한 갯벌이 드러나는 갯벌체험장이다. 100㏊에 이르는 갯벌은 백합과 맛조개가 지천이다. 돌로 담을 쌓아 썰물 때 미처 빠져나가지 못한 물고기를 잡는 둔장마을의 석방렴은 국내 최대 규모.

단단한 모래갯벌로 이루어진 둔장해수욕장은 전통 어로방식인 후릿그물로 물고기를 잡는 체험행사가 흥미롭다. 50m 길이의 그물을 양쪽에서 잡고 당기면 다이아몬드 제도의 해저를 누비던 팔뚝만한 숭어와 노란알이 선명한 대하, 새끼손가락만한 복어 등이 줄줄이 올라온다.

신안=글·사진 박강섭 관광전문기자 kspark@kmib. 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