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급 지적장애인 화가 이호연씨의 도전 “뉴욕 맨해튼서 개인전 열겁니다”

입력 2011-06-29 18:12


“그림 그릴 때가 가장 행복합니다. 재미있으니까요. 하나님 영광을 위한 그림을 그리고 싶습니다. 십자가 군병이 될 것입니다.”

이호연(29·서울 강남구 신사동 소망교회)씨는 3급 지적 장애인이지만 그림만큼은 수준급이다. 백석예술대와 협성대교 예술대학원에서 서양화를 전공했다. 2005년 서울 인사갤러리에서 개인전을 시작한 후 10여 차례의 단체전과 개인전을 통해 두각을 나타냈다. 지난해 8월 미국 뉴욕 맨해튼에 위치한 뉴욕예술학생연맹(The artstudentsleague of NY)센터의 연구생으로 입문해 주목받는 장애인 작가로 떠올랐다.

이씨가 장애를 극복한 데는 그림만한 것이 없다고 여긴 이씨 부모의 땀과 눈물, 기도가 밑거름이 됐다. 아버지 이용기(58·사업·소망교회)씨는 “호연이가 그림을 시작하고 난 뒤 언어가 발달하고 지적 능력도 많이 향상됐다”며 “아들을 키우면서 가장 잘 한 것은 그림 공부를 시킨 것”이라고 말했다.

어머니 안경애(56·소망교회)씨는 1982년 여름을 이렇게 회상했다. 둘째 아들인 호연이를 임신했을 때 자궁 전치태반 증상으로 산모의 생명이 위태로웠다. 태아를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제왕절개 수술…. 의사의 결단으로 호연이는 출산 예정일보다 이른 칠삭둥이로 태어났다. 몸무게 1.72㎏ 저체중 미숙아. 게다가 특이한 호흡장애인 ‘초자막질환’(호흡곤란증후군)에 걸린 상태였다. 의사는 말했다. “아이의 생존을 장담할 수 없습니다…”라고.

하지만 아들은 50일 인큐베이터 생활을 거쳐 기적처럼 살아났다. 1년 이상 입·퇴원을 반복했다. 눈 코 입. 어디 한 군데 아프지 않은 곳이 없었다. 결국 후유증으로 지적장애 판정을 받았다. 왜 하필 내 자식이어야 할까. 남편 역시 현실을 선뜻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애통했다. 손을 잡고 기도하길 며칠, 부모는 축복이라 여기기로 했다.

“호연이에게 ‘미안하다’고 말했습니다. ‘내가 살고 네가 장애인이 됐구나….’ 그리고 눈물로 서원 기도를 드렸죠. ‘하나님께 아들을 바칩니다. 장애 아이를 가진 부모이기에 그동안 알지 못했던 더 큰 세상을 알게 되어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라고 말입니다.”

학교에 입학했다. 하지만 급우의 놀림거리가 되기 일쑤였다. 어눌한 말투 때문이었다. 성적은 바닥에 머물렀다. 거의 꼴등이었다.

하지만 그가 변하기 시작했다. 중학교 때 그림을 그리면서부터다. 언어치료를 병행했다. 곁에는 힘과 용기를 북돋는 친구들이 함께했다.

“저는 늘 숨이 가쁜 학생이었습니다. 얼굴은 폐의 산소 부족으로 새파랬고 운동장에서 달리기를 할 수 없을 정도로 약했죠. 말도 어눌한 학습지진아였고요. 대학입학도 실기과목인 드로잉(정밀묘사)을 똑같이 그릴 수 없어 사실 힘들었어요. 대신 완성된 그림으로는 가능했기에 겨우 대학에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이씨는 언뜻 보면 비장애인처럼 보인다. 그림 실력은 같은 지적 수준의 장애인에 비해 월등히 뛰어나다. 매사에 적극적이고 스스로 학습하려는 의지도 강하다.

안씨는 “주변에 장애를 가진 부모들이 모두 부러워할 정도”라고 자랑했다. 최근 휴가차 방한 중인 이씨가 다시 떠날 미국생활에 대해서도 “호연이는 혼자 밥도 잘 차려먹고 설거지를 깨끗이 할 줄 알아서 걱정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주위에선 이씨의 그림에 대해 “맑은 아침 7시 같다”고 말한다. 어두움을 물리친 아침처럼 신선하고 꾸밈이 없다는 것이다.

작품의 주제는 늘 하나님이 만드신 자연이다. 자연이 인간에게 준 평안을 주기 때문이라고 했다. 하늘과 땅, 물 바람 공기 나무 등을 밝은 톤의 유화 물감으로 돋보이게 한다. 캔버스 여백의 효과를 살린 것도 인상적이다.

신명나게 인터뷰를 하던 이씨는 요즘 신앙생활에 열심이라고 화제를 돌렸다. 매주 주일 예배와 청년부 성경공부 모임에 참석하는 것은 물론, 매일 성경을 읽고 기도로 하루 일과를 마친다.

“찬양과 복음성가를 부를 때는 참 행복해요. 그래서 하나님 좋아하시는 일만 하고 싶습니다. 요즘 ‘주님, 제가 만나는 사람을 통해 많은 배움과 용기를 주세요’라고 기도해요.”

모든 일에 자신감이 붙은 이씨는 이젠 새로운 일에 도전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하나님이 함께하시니 두려움이 없다고 했다.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는 빌립보서 4장 13절의 말씀을 즐겨 외운다.

“출애굽의 주인공 모세는 말더듬이라고 합니다. 스스로 ‘말에 능하지 못한… 입이 뻣뻣하고 혀가 둔한 자’(출 4:10)라 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달변의 아론 대신 눌변의 모세를 택합니다. 저도 모세처럼 하나님이 부르시면 언제든 적극 나서겠습니다. 비록 말은 좀 어눌하지만 제게 그림을 잘 그릴 수 있는 귀한 능력을 주셨으니 하나님은 참 공평하신 분이시죠?(웃음)”

그는 이제 그림으로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일만 생각한다. 연말에는 ‘모세 5경에서 예수 부활까지’란 주제의 개인전을 미국 뉴욕 맨해튼 거리에서 열 계획이다. ‘부활’, ‘십자가’ 등 20여개의 작품을 준비하고 있다.

한 번 앉으면 3∼4시간 작품 제작에 몰두한다는 지적 장애인 화가 이호연씨. 피하고 싶은 역경과 고난에 당당히 맞서 하나님의 사랑을 발견한 이씨에게 역경은 더 이상 두려운 대상이 아니며 새로운 도전일 뿐이다.

글 유영대 기자·사진 이병주 기자 ydyo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