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예수 남몰래 방랑기(6)
입력 2011-06-27 10:17
시한부 환자의 기도거부 사건
나 예수는 뉴욕에 있는 어떤 병원에 가서 가끔 자원봉사를 했습니다. 신실한 신자가 기증한 유산으로 설립한 병원이었습니다. 어려서 부모를 잃고 고아원에서 자랐지만 믿음 좋은 원장 덕택에 영원한 생명을 얻은 사람입니다. 십자가에서 ‘위기는 위대한 기회’가 된다는 걸 배웠기에 점원에서 시작해서 큰 기업을 경영하게 되었습니다.
자원봉사라야 별 것도 아닙니다. 간호사 하면 여자 일색이던 시절이 지나가고 가뭄에 콩 나듯 남자 간호사들이 출현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자 남자도 간호보조사로 봉사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중환자실(ICU)에서 하루 네 시간씩 허드렛일과 간호사의 심부름을 했습니다. 허지만 배우는 것이 많아 남을 돕기보다는 자기를 돕는 일이 되었습니다.
중환자실은 위중한 환자들을 치료한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입니다. 그런데 자원봉사를 해 보니 환자만 위중한 것이 아니라 의사와 간호사도 항상 위기를 의식하고 행동해야 합니다. 게다가 가족들의 마음은 더 위중했습니다. 그 자리에 주저앉아 땅을 치며 통곡하기도 하고, 어떤 때는 실신하기조차 합니다. 하루에 몇 명씩 죽어나가기도 하니까 이곳에 있으면 삶과 죽음을 날마다 넘나들게 됩니다.
그 날도 어떤 젊은 목사 한 분이 중환자실을 방문했습니다. 50대 중반의 남자환자였는데 간암이 너무 악화되어 이제는 사흘 넘기기 어렵답니다. 그 소식을 듣고 담임목사가 임종기도 하기 위하여 병원에 왔습니다.
중환자실에는 방문객이 2명을 넘을 수 없다는 병원규정에 따라 환자 아내와 담임목사만 들어갔습니다. 그리고 기도시간에는 환자실 문을 꼭 닫는 것이 관행이었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채 오 분도 지나지 않아 목사가 문을 열고 나왔습니다. 얼굴이 뻘겋게 상기되어 있고 무엇엔가 모욕을 당했다는 분노가 흐르고 있었습니다. 그 때 환자에게서 이런 고함이 들려나왔습니다.
“나 죽기 전에 다시는 기도하러 오지 마세요.”
가끔 이단들이 치료기도 해 준다면서 돈을 뜯으러 왔다가 환자나 가족과 다투는 걸 보았습니다. 허지만 죽음을 하루 이틀 앞둔 시한부 중환자가 담임목사의 기도를 거부한 건 처음 보는 일입니다.
그 아내의 얼굴에도 수심이 가득했습니다. 나 예수는 무엇이라도 위로와 격려가 되는 말을 해야 되겠다 싶어 자초지종을 물었습니다. 좀 거북스러운지 뜸을 들이다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담임목사께서 임종기도를 하겠다고 하니까 저이가, ‘천국도 없고 지옥도 없다는 목사님께서 저를 위해 무슨 기도를 하시렵니까? 기도 안 받겠습니다’ 하며 눈을 똥그랗게 뜨고, 목사님 얼굴을 향해 소리를 질렀어요.”
“아이, 저런, 그것 참....얼마나 울화통이 터지면 그랬겠어요.”
나 예수는 즉시 원목실에 전화를 걸었습니다. 죽음을 앞둔 이 환자의 영혼이 죄의 용서함을 받아 깨끗하여지고, 하나님 품에 꼭 안기도록 기도해 달라고 한 마디 덧붙였습니다.
그 날 퇴근하고 나오는데 ‘병원설립자의 방’이라는 간판을 보게 되었습니다. 이런 방이 있다는 건 그 때 처음 알았습니다만 하여튼 들어가 보았습니다. 설립자가 쓰던 유품들 특히 성경도 보관되어 있었고 가족들의 사진도 몇 장 전시되어 있었습니다. 그리고 나가는 문 옆 벽면에는 ‘설립자의 기도’가 큼직한 글자로 적혀 있었는데 그 가운데 이런 대목도 있었습니다.
“주님, 이 병원에 출입하는 사람마다 결코 ‘지옥 가는 부자’처럼 되지 말고, 오히려 ‘영원히 구원받는 신실한 고아’처럼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이정근 목사(원수사랑재단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