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궁의 사계] 달빛 기행
입력 2011-06-22 17:33
보름은 밤의 생명력이 가장 왕성한 날. 궁궐에 하나둘 조명이 피기 시작했다. 창덕궁 달빛기행에 나선 관람객의 얼굴이 홍조다. 전각 가운데 돋보이는 곳은 인정전과 주합루다. 인정전의 단청은 불빛 아래 화려함을 더하고, 언덕 위에 자리한 주합루의 위용은 압도적이다.
낭만적인 공간으로는 낙선재가 으뜸이다. 방마다 다른 문양의 창호(窓戶)가 은은히 빛난다. 문살의 기하학적 구성이 조화롭다. 낙선재는 이방자 여사의 거처로 많이 알려졌지만 첫 주인은 헌종의 후궁 경빈김씨였다. 왕비를 간택하는 예심에서 3위를 했으나 몰래 본 헌종이 얼마나 흠모했던지 나중에 궁으로 불러들였다. 낙선재는 둘이 사랑을 나눈 러브하우스이니, 인테리어가 아기자기 아름다울 수밖에.
달빛기행은 돈화문을 출발해 대궐을 순례한 뒤 후원의 연경당에서 춘앵무와 대금, 판소리로 꾸며진 숲속 음악회까지 구경하고 나면 2시간이 훌쩍 지나간다. 그 사이 보름달은 중천에 걸려 있다. 행사는 여름 장마철을 피해 9월과 10월에 이어진다.
손수호 논설위원 shsho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