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태수의 영혼의 약국 (104)

입력 2011-06-22 10:06

교회 이런 건 진짜 상상이겠지?

나는 여러 종류의 공책을 갖고 있다. 1년이면 15권 정도의 수첩이 쌓인다. 자동차에 하나, 교회 사무실에 하나, 화장실에 두 개, 신문 스크랩용, 성서 묵상용, 설교 기록용, 여행용 등등이다.

그 중에서 내가 가장 심혈을 기울여 적는 것 중의 하나가 ‘맛집’ 공책이다. 국수를 좋아해서 전국의 국수집들을 적다보니 그렇게 되었다. 그게 점점 넓어져서 지역별, 음식별로 분류를 하면서 점점 두꺼워졌다. 어떤 때는 요리하는 법을 적기도 하는데, 찾아다니며 먹는 것을 지나서 음식을 만들어보고 싶은 마음이 일어났기 때문이다. 몇 년 전에는 일주일에 한 번씩 우리 교회에서 같이 사역하는 목회자들에게 한 주일에 한 가지씩 요리를 만들어 나누곤 했다. 꼬꼬벵, 다랑어 구이, 닭똥집 구이, 온갖 소스를 얹은 스파게티 뭐 그런 것들이었는데 역시 주 요리는 국수였다. 공책 하나는 어디를 가든지 들고 다닌다. 어디서 뭘 먹게 될지 모르기 때문이고, 뭘 먹어야 할지 난감해 할 때 깔끔하게 ‘여기 이 음식이 좋다’고 말해주고 싶기 때문이다.

요즘은 세상 어딜 가든 음식점이 많다. 그러나 막상 무엇을 먹어야 할지 막막할 때가 있다. 낯선 곳에서는 더욱 그렇다. 그럴 때 음식점이나 음식을 적어둔 내 공책은 빛을 발한다. 그걸로 어떤 때는 사람들의 감동을 일으키는 경우도 있다. 밥도 먹기 전에 말이다.

그러면서 내게 쌓인 경험 중의 하나는 방송이나 언론에 소개된 집은 가급적 피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물론 처음부터 그런 것은 아니다. 공책을 쓰기 시작한 초기에는 유명한 집을 찾아 다녔다. 그때는 지금처럼 언론과 맛집들이 유착되어 있지 않은 때이기도 했고, 다른 방법을 알지 못하기도 했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자 점점 유명한 맛집에 대한 느낌을 알게 되었다. 딱 잘라 뭐라고 말할 수는 없는 노릇이나, 그런 집들에서는 ‘음식 맛’이 아니라 뭔가 ‘위장된 손맛’이라고나 할까, 음식 외에 다른 것을 포장해서 내놓는 그런 느낌을 받기 시작했던 것 같다. 물론 방송이 음식에 대해서 기대감을 높여 놓은 탓도 있었을 것이다. 그 기대치에 미치지 못한 것에 대한 느낌일 수도 있었다는 뜻이다. 그러나 여하튼 그때부터 나는 나름의 안목으로 음식점을 찾고 맛본다.

“나는 TV에 나오는 맛집이 왜 맛없는지 알고 있다.” 다큐멘터리 영화 ‘트루맛쇼’의 카피다. 아직 영화를 보지 못했지만, 그동안 우리가 미심쩍어 하던 그것들이 사실이라는, 이름난 집 치고, TV에 나오는 대다수 음식점들과 그들이 내는 맛이 ‘자연과 진실’이 아니라 ‘꾸밈과 거짓’이라는 것이다. 언론을 팔기 위해 언론사가 음식점을 이용한 것이다. 이를테면 서로가 서로를 팔고 사고한 것이다. 거기에 음식은 없고 ‘상업’만 있었다는 뜻이다.

오늘 아침, 팔도의 음식점이며 음식 이야기들을 적은 내 공책을 쓰다듬다가 나는 걱정 하나를 보탠다. 가뜩이나 교회가 세상의 신뢰를 얻지 못하는 때, 미국의 그 엄청나다던, 그래서 우리나라 누구누구도 그 교회를 본떠 지었다는 로버트 슐러의 수정 교회가 경매로 넘어가는 판에, “나는 TV에 나오는 유명한 교회가 왜 구원이 없는지 알고 있다”는 블록버스터(Blockbuster)급 다큐멘터리(documentary)가 전국의 극장에서 상영되는 허황된 상상 말이다.

유명한 게 ‘가짜’가 되는 그런 세상이다. 이 짬에 교회도, 교회를 다니는 사람들도 생각해야 한다. TV 에 자주 나오는 유명한 우리 목사, 우리 교회도 혹시 '트루맛쇼'의 거기, 그 ‘음식’이 아닌가 하고 말이다. 아닐 것이다. 그러면 내 공책이 하나 더 추가되겠지. ‘전국의 가볼 만한 교회’ ‘내가 다니고 싶은 교회’ ‘전국의 구원 받을 교회’ 이런 건 진짜 상상이겠지?

춘천 성암감리교회 담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