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인민보안성 내부자료 최초 공개] “재판은 사실상 요식행위 돈과 빽이 양형 좌우한다”

입력 2011-06-21 18:38

탈북자들이 전하는 법 적용 실태

“법은 껍데기이고 돈과 ‘빽(인맥)’이 좌우한다.”

탈북자들이 전하는 북한의 법 해석과 적용 실태다. 북한 인민보안성(현 인민보안부, 경찰) 출신 탈북자인 K씨는 21일 “법은 대내외에 선전하기 위한 도구일 뿐”이라면서 “사실상 재판은 요식행위”라고 설명했다. K씨는 2000년대 후반까지 인민보안부에 근무했으며, 남한에 정착해 현재 정부의 대북업무를 돕고 있다.

K씨에 따르면 노동당의 누구를 아느냐에 따라 양형이 좌우된다. 당 안전위원회가 판결을 좌우하며, 안전위 구성원 중에서도 책임비서가 결정권을 쥔 구조다. 책임비서가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피해자와 가해자가 뒤바뀐다. 당에서 결정하면 검사나 판사처럼 국가기구 소속 공무원들은 복종해야 한다. 그는 “죽은 사람과 죽인 사람이 있는 살인사건처럼 명확하게 드러나는 경우는 외부 힘이 작용할 여지가 적다”면서 “그러나 수사를 하다 보면 명백한 경우보다 모호한 경우가 훨씬 많다”고 설명했다.

방어권도 주어지지 않는다는 게 K씨의 주장이다. 그는 “변호사 제도는 대내외 선전용에 불과하며, 변호사들이 피고인 입장에 서서 반론해주는 게 아니라 단지 재판 절차를 도와준다”면서 “억울해도 제보할 언론마저 없다”고 말했다. 그는 본보가 입수한 인민보안부 내부자료 ‘법투쟁부문 일군들을 위한 참고서’와 관련, “(치안기관 담당자들에게) 이런 사례와 절차가 있으니까 참고하라는 정도”라면서 “기관 내부 선전용으로 현실이 아니라 ‘이상’을 써놓은 참고자료”라고 주장했다.

단련대(일종의 교도소)에서 3년 동안 근무했다는 탈북자 L씨(27)는 “아는 언니에게 남한 CD를 구해보다가 적발된 적이 있었다. 그런데 높은 사람이 이번만 봐주라고 해 나왔지 다른 사람들 같으면 아마 처벌받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조사받고, 재판받고 교화소(교도소) 가기 전에 몸이 이미 망가지고, 정신병도 걸리는 경우가 많다”면서 “길면 6개월 정도 조사를 받게 되는데 독방에서 정자세로 앉아 있게 하고, 자세가 흐트러지면 마구 구타한다. 아는 여성은 석 달 만에 걷질 못했다”고 증언했다.

또 다른 탈북자 M씨는 “먹고살기 어려워 전기선을 끊어 팔아먹는 경우가 많은데 걸리면 무조건 총살을 당한다”면서 “공개처형이 일년에 2∼3번 많으면 4∼5번도 직접 봤으며, 공개처형도 교양으로 대학생이든 누구든 나와서 봐야 한다”고 말했다. 특히 “김정일과 관련된 한마디만 잘못해도 몽땅 공개처형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당이나 치안기관 간부의 가족처럼 배경이 든든한 사람은 그냥 눈감아주는데 전기선을 무려 1t을 잘라 팔아먹어도 처벌받지 않았다”고 말했다.

김정수 북한이탈주민지원재단 연구지원센터장은 “기획 탈북을 진행할 때 돈이 든다고 하는데 이는 담당지역 북한 관리들을 매수하는 비용”이라면서 “폐쇄사회일수록 금전적이든 성적이든 뇌물이 범죄를 무마해줄 가능성이 높아진다”고 주장했다.

이도경 기자 yid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