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포커스-송주명] 일본 보편복지 논쟁의 시사점

입력 2011-06-21 17:30


대지진 이후 일본의 복구대책 수립이 간 나오토 총리의 퇴진문제와 연동되면서 난관에 부딪히고 있다. 일본이 ‘정상’으로 복귀하기까지 엄청난 시간과 비용이 들어갈 것이며, 정치적으로도 여러 가지 우여곡절이 발생할 것이다. 이런 격변 속에서 때로 미래사회를 위해 중요한 정책들이 우선순위에 떠밀려 좌초되기도 한다. ‘어린이수당’의 경우가 그렇다. 어린이수당은 민주당이 2009년 총선에서 복지지향 정당이 될 것임을 천명한 상징적 정책이었다. 그만큼 이 정책을 둘러싸고 여야 간의 논쟁은 격렬했다. 그런데 어린이수당이 부흥관련법안의 동의를 얻기 위해 정치적으로 희생될 가능성이 아주 커지고 있다.

어린이수당은 저출산, 고령화를 심각하게 겪어온 일본 사회의 문제해결을 위한 획기적 대책이었다. 주요 내용은 0세부터 15세까지 어린이들의 양육자에게 일정액의 현금을 지급함으로써, 양육과 출산을 지원한다는 것이다. 물론 일부 수당만을 노리고 자녀수를 지나치게 늘리거나, 지급된 금액을 양육비로 쓰지 않고 저축하는 등 정책목표를 왜곡하는 일이 발생할 수도 있지만, 출산 및 양육부담을 줄여주는 효과는 충분히 있을 것이다.

재정계획 확실히 세우고

무엇보다도 주목할 만한 점은 어린이수당이 ‘기본소득’과 유사한 보편복지의 일환으로 도입되었다는 것이다. 어린이수당이 도입되기 전 일본에는 ‘아동수당’이라는 어린이복지제도가 있었다. 1972년 시작된 아동수당은 0∼12세의 어린이를 대상으로 하고, 연령과 어린이 수에 따라 금액이 차등 지급됐는데, 가장 중요한 것은 소득에 따르는 자격제한이 있었다는 점이다. 일정소득 이상이면 지원대상에서 제외되는 선별복지인 셈이다. 반면 어린이수당은 소득제한을 두지 않고, 보다 넓은 연령범위를 대상으로 동일한 금액을 제공하는 보편복지다. 2010년에는 1인당 매월 1만3000엔이 지급됐고, 2011년에 2만6000엔으로 증액하겠다는 계획까지 있었다.

그러나 이 정책은 재원대책 등 준비가 불충분해 정책의 지속을 둘러싼 논쟁에 휘말릴 수밖에 없었다. 소위 포퓰리즘 복지론을 접고 선별복지로 전환하라는 야당의 압력은 대단했다. 특히 동일본 대지진 이후 자민당과 공명당은 소득에 따라 지급대상을 제한하고, 연령과 수에 따르는 차등화를 받아들이라고 압박했다. 예전의 아동수당으로 되돌아가라는 것이다. 이에 대해 민주당은 소득제한의 수용 등 야당의 의견에 따를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부흥에 시급한 ‘공채발행법’, 간 총리의 염원인 ‘재생에너지법’을 통과시키기 위해서다. 이렇듯 준비되지 못한 보편복지론은 강력한 역풍에 직면하기 쉽고, 긴급한 정책의제 앞에서 무력화되기 쉽다.

이 논쟁은 한국의 무상급식, 보편복지논쟁과 많이 닮아 있다. 그만큼 커다란 시사점을 준다. 첫째, 보편복지론은 재정계획을 분명히 하고, 이를 기초로 일관된 설득과 정책접근을 해야만 현실화될 수 있다. 재정계획이 불분명한 보편복지론은 일시적인 지지를 얻을지 모르지만, 선거 중이나 이후에 커다란 역공을 받을 수 있다. 둘째, 보편복지는 사회의 중요시스템을 변화시켜, 평등을 지향하는 사회를 점진적으로 실현해가는 것을 의미한다. 현존하는 계급이나 계층구조를 포괄하지만, 새로이 설계된 체계를 도입함으로써 사회적 평등을 강화해가는 것이 보편복지이다.

일관된 설득·정책접근이 관건

반면 선별적 복지론은 소외계층을 옹호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현존 사회시스템을 그대로 둔 채 잔여 범주로서만 복지를 인정한다. 보편복지를 실현하려면, 일관되고 전략적인 복지비전은 물론이요, 우리 사회가 차이를 넘어서 보다 평등하고 조화롭게 발전해야 한다는 강한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 이는 어떠한 긴급한 정책의제가 있더라도 보편복지의 가치가 무시돼서는 안 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송주명 한신대 일본지역학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