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코너-오종석] 中, 홍색바람의 그늘
입력 2011-06-21 17:41
공산당 창당 90주년 기념일(7월 1일)을 앞두고 중국 대륙은 지금 ‘홍색(紅色)열풍’이 불고 있다. 베이징을 비롯해 중국의 주요 도시에서는 연일 공산당 업적을 기념하는 각종 행사가 열린다. 관영 신화통신을 비롯해 국영방송인 CCTV, 공산당 기관지 인민일보 등 각종 언론매체에서는 관련 기사로 도배를 하고 있다.
공산당 창당 과정을 담은 홍색 블록버스터 ‘건당위업(建黨偉業)’을 비롯해 창당 90주년을 기념해 개봉되는 영화만 무려 30편 가까이 된다. 공산당 혁명 유적지를 방문하는 ‘홍색관광’도 한창이다. 신화통신에 따르면 중국 인민해방군 전신인 홍군(紅軍)이 창설돼 ‘공산혁명의 성지’로 불리는 징강산(井岡山)은 요즘 관광객들로 넘쳐난다. 공산당 창당 90주년을 앞두고 선열들을 추모하고 혁명 전통을 체험하거나 혁명 정신을 본받으려는 공산당원이 대부분이다. 관광객들은 징강산 혁명기념관을 둘러보며 마오쩌둥(毛澤東) 전 주석을 기리고 홍가(紅歌)를 합창하며 홍군의 혁명정신 계승을 다짐하고 있다. 중국 공산당의 대장정이 시작됐던 장쑤(江蘇)성 루이진(瑞金)이나 대장정 이후 수도였던 옌안(延安) 등 혁명지에도 공산당 역사의 발자취를 느끼려는 홍색 관광객들이 몰리고 있다.
중국 공산당의 업적은 위대했다. 특히 개혁·개방을 통한 시장경제 도입 이후 30여년 만에 미국과 함께 세계 경제를 좌지우지하는 G2(주요 2개국)의 반열에 오른 것은 중국 공산당의 가장 큰 성과라 할 수 있다. ‘미국과 영국이 산업혁명 당시 100년간 이룩한 성과를 30년이란 짧은 기간에 이뤘다’ ‘중국은 누구도 하지 못한 거대한 기적을 이뤄냈다’는 등의 찬사가 국제사회에서도 쏟아지고 있다. 1921년 창당 당시 13명의 대표와 53명의 당원으로 미약하게 출발한 중국 공산당은 2011년 현재 8000만명의 당원을 거느린 거대 공룡이 돼 있다. 이들이 오늘날 정치, 경제, 사회 모든 분야에서 13억4000만명의 중국을 이끌고 있다.
하지만 이런 공산당 1당 체제 하에 그늘도 많다. 공산당의 절대 권력은 부정과 부패를 초래했다. 많은 공산당 부패 관료들이 호의호식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반면 공산당 체제에 반대하거나 인권운동을 해온 많은 민주인사들은 고문당하고 구속되는 등의 탄압을 받고 있다. 주로 농촌이나 도시의 빈민들이지만 빈부격차나 신분차별 등으로 고통받는 인민도 적지 않다. 최근 광둥(廣東)성 등에서 발생한 농민공(農民工·농촌 출신 도시근로자)들의 대규모 반정부 시위는 이런 모순에서 비롯됐다.
특히 살인적인 물가는 인민들의 속을 타들어가게 하고 있다. 지난 16일 중국 중앙은행인 인민은행이 2분기 은행 예금주, 은행 내부인사, 기업가를 상대로 설문조사한 결과 응답자의 68.2%가 “현재 물가가 너무 높아 감당하기 힘들다”고 대답했다. 최근 발표된 5월 중국 소비자물가지수(CPI)는 5.5%로 34개월 이래 최고치를 기록했으며, 6월 CPI는 6%를 넘어설 것이란 전망이다.
이런 상황에서 홍색바람을 칼바람처럼 느끼는 인민도 적지 않아 보인다. 당장 먹고살기도 힘든 농민공 등 일반 서민들의 시선은 곱지 않다. 한 인터넷 누리꾼은 “(공산당이) 이토록 소란스럽게 혁명 분위기를 살리고 홍색 이념을 주입시키는 것은 인민들의 불만을 잠재우기 위한 술수에 불과하다”고 비난했다. 또 다른 누리꾼은 “지역과 계층 간 소득 차이는 점점 커지고 집값과 물가는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오르는 상황에서 꼭 요란하게 창당 잔치를 벌여야 하는지 의문”이라고 꼬집었다.
중국 공산당이 그동안의 성과를 홍보하고 당 이념을 재확립하기 위해 창당 90주년 행사를 치르는 것은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너무 요란하게 잔칫상을 차리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마오쩌둥은 항상 힘들고 어려운 인민들과 함께하기를 원했다고 한다. 마오의 진정한 혁명정신이 지나친 홍색열풍에 퇴색되지 않을까 걱정된다.
베이징=오종석 특파원 jsoh@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