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글속 세상] 나라 위한 희생… 0.1%의 희망도 포기 않는다
입력 2011-06-21 17:30
디옥시리보핵산. DNA라고 부르는 이중 나선구조의 화학물질이다. 염색체를 이루는 DNA는 개체의 고유한 유전정보를 간직하고 있어 신원확인에 효과적으로 사용된다. 이런 특성을 지닌 DNA가 전쟁이 끊어놓은 혈육의 고리를 이어주고 있다.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의 중앙감식소에서 전사자들의 유해는 유가족들에게 인도될 수 있는 가능성의 실마리를 찾아간다. 이곳에서는 매년 한국전쟁 전사자들의 유해 1000여구가 감식되고 있다. 감식관들은 격전의 현장에서 수습한 유해를 다양한 방법으로 분석해 유전정보를 수집한다. 이렇게 확보한 DNA 시료는 국방부 조사본부 과학수사연구소에서 입체적인 정밀감식을 거쳐 전사자의 신원을 확인하는 열쇠가 된다. 혈육의 혈연이 과학의 힘으로 밝혀지는 과정이다.
전사자의 유해를 감식하는 과정은 사명감이 주는 ‘집요함’으로 이루어진다. 전사자 DNA 분석은 과학수사 드라마에서처럼 간단하게 끝나는 작업이 아니다. 60여년을 땅 속에 묻혀있던 유골에서 극미량의 유전자라도 찾아내 분석하기 위해서는 최소 3주일에서 최장 3개월 이상의 시간이 소요된다. 과학수사연구소 안희중 유전자감식과장은 “연구원들은 서너 번의 분석만으로도 포기할 만한 시료를 수십 번을 반복해서 검사한다”며 유가족들을 면담한 기억이 마음가짐을 남다르게 한다고 말한다.
국방부는 유해에서 채취한 시료와 유가족의 DNA를 비교해 지금까지 64명의 신원을 확인했다. 이는 나라를 위해 희생한 이들에 대한 국가의 ‘무한책임’이 실현된 소중한 성과이며, 그 숫자를 13만여명(미수습 전사·실종자의 수)까지 늘려나가야 할 과제의 시작이다. 유해발굴감식단 감식관 장유량 박사는 “자신의 생전에 찾을 수 있겠냐고 질문하는 유가족들의 애절한 사연을 들을 때마다 막중한 책임감을 느낀다”며 보훈의 달에만 집중되는 것이 아닌 지속적인 관심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감식관들과 연구원들의 치열한 손길은 깊은 산속에서 유해의 일부라도 찾으려는 발굴단의 땀방울과 함께 국가에 대한 신뢰의 DNA를 배양하고 있다.
사진·글=구성찬 기자 ichthu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