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인민보안성 내부자료 최초 공개] 사회 혼란 방증… ‘법’ 내세워 3대세습 안착에 활용
입력 2011-06-19 21:35
인민보안성이 2009년 6월 ‘법투쟁부문 일군(일꾼)들을 위한 참고서’를 처음 펴낸 것은 각종 범죄와 사건들로 북한 사회가 그만큼 혼란스러워졌다는 점을 방증한다.
자료에 등장하는 사례를 보면 배고픔을 참지 못해 물건을 훔치는 생계형 범죄와 더불어 협동농장 관리위원장이나 기업소 지배인 등 중간 간부급 인사들의 횡령 사건도 수두룩하다. 이로 인해 북한의 사회주의 질서 자체가 위협받는 상황이 됐다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경제난이 가중되면서 이 같은 범죄가 자주 일어나기 때문에 처리 기준을 만들 필요성이 커졌을 것으로 분석했다.
이 자료는 형법의 적용, 특히 범죄와의 투쟁을 강조하면서 “범죄의 개념에 대한 이해를 바로 하여야 형법 각칙에 예견된 범죄 현상에 대해 옳게 해석 적용할 수 있다”고 강조하고 있다. 한 북한법 전문가는 19일 “비슷한 종류의 사건이 지역에 따라 다르게 처리되고 이에 따라 일선에서 (사법체제에 대한) 불만이 고조됐을 수 있다”고 말했다. 한 탈북자는 “북한에선 돈과 백이 있으면 비법자(범죄자)가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교시와 말씀, 당의 방침을 앞세웠던 북한 당국이 이렇듯 ‘법’을 강조하고 나선 것 자체도 의미가 있다. 그동안 북한에서 ‘법’은 형식상 존재할 뿐 실제 기능은 하지 못했다는 점에서 일종의 장식품에 불과하다는 평가가 많았다. 하지만 1992년 헌법 개정 당시 ‘국가는 사회주의 법률제도를 완비하고 사회주의 법무생활을 강화한다’는 조항을 신설, 사회주의 법치주의를 도입한 뒤 줄곧 법치를 강화하는 정책 흐름을 보이고 있다. 2004년에는 처음으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대중용 법전을 발간했고 이후 각종 개별법을 쏟아내고 있다.
김 위원장 역시 ‘법치’ 강화 목소리를 내고 있다. 2005년에는 “당의 영도 밑에 법치국가를 건설해야 한다”는 내용을 핵심으로 하는 ‘사회주의 법치국가 건설사상’을 제시했다. 물론 이 역시 북한이 국제사회에 보여주기 위한 장식용이라는 견해도 있다.
하지만 이번 자료가 발간된 시점은 2009년 6월로 김 위원장 위중설이 유포되는 등 북한 내부의 위기감이 고조되던 시점이었다. 김 위원장은 2008년 8월 뇌졸중으로 쓰러졌었다. 따라서 3대 세습 체제를 공고히 하고 ‘김정은 후계구도’를 보완하기 위한 수단으로 법치를 이용하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김나래 기자 nara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