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인한 계절… 고시촌 우울증 비상
입력 2011-06-19 22:03
‘국가 고시철’이 다가오면서 고시촌 수험생들은 막바지 시험 준비로, 관내 경찰은 자살 사건이 일어날까 초긴장 상태다. 이맘때면 극심한 스트레스와 우울증을 견디지 못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는 수험생이 나오기 때문이다. 오는 22일에는 사법시험 2차, 28일 행정고시 2차, 다음달 23일 7급 공무원 필기, 8월 9일엔 기술고시 2차 시험 등이 예정돼 있다.
19일 점심시간에 찾은 서울 노량진동 고시촌 식당 골목은 여느 때와는 달리 한산했다. 많은 수험생이 시간에 쫓겨 학원 안에서 샌드위치나 김밥으로 식사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7급 공무원 시험을 준비 중인 김지윤(24·여)씨는 “수험생끼리 모이면 우울한 얘기만 한다. 시험에 또 떨어졌을 때의 일은 생각하고 싶지 않다”고 했다.
7·9급 및 경찰 공무원 시험 학원이 몰려 있는 노량진에선 지난 2월 순경 공채 필기시험 직후 같은 날 수험생 2명이 각각 성적과 이성 문제로 고시원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당시 사건 조사를 맡았던 경찰관은 “순찰을 돌다 만취해 울고 있는 수험생을 보면 혹시라도 딴 생각을 할까 가슴이 철렁하다”면서 “고시철마다 자살자가 나오는 것을 알지만 경찰로선 딱히 막을 방법이 없다”고 말했다.
학원들은 분위기 전환을 위해 애쓰고 있다. 노량진의 공무원고시학원 관계자는 “최근 학원 분위기가 많이 예민해진 것 같아 수업시간에 깜짝 간식파티를 열어 학생들에게 초콜릿 등을 나눠줬다”며 “불안 상태가 심한 학생들에게는 교사가 상담시간을 따로 마련해 ‘마음 다스리는 법’을 알려준다”고 말했다.
서울 대학동과 신림동 등 행시와 사시 준비생이 몰려 있는 고시촌 분위기도 노량진과 마찬가지다. 지난 2월 사시 1차 시험이 있던 날 대학동 고시촌에선 5년간 시험을 준비한 조모(29)씨가 고시원 방에서 목을 매 숨진 채 발견됐다.
사시 2차 시험을 앞둔 대학생 전제균(25)씨는 “뽑는 인원이 계속 줄고 있어 불안하다”며 “수험생활이 길어져 우울증에 시달리던 한 친구는 결국 정신과 치료를 시작했다”고 전했다.
최근 관악구 정신보건센터가 수험생 83명을 대상으로 우울 자가진단 검사(BDI)를 한 결과 9명이 ‘심각한 우울 상태’로 평가됐다. 동작구 정신보건센터가 실시한 같은 조사에서도 110명 중 11명이 ‘심각’ 상태였다. 수험생 10명 중 1명꼴로 우울증 치료가 필요한 것이다. 서울시 정신보건센터 관계자는 “우울증 예방을 위해선 규칙적인 수면과 식사가 필수적이며, 증세가 심할 경우엔 내 상황을 주변에 알리고 도움을 청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조언했다.
정부경 기자 vick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