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광형의 ‘문화재 속으로’] (73) 제주 용천동굴의 수수께끼

입력 2011-06-19 17:30


제주시 구좌읍 월정리에 있는 용천동굴(천연기념물 제466호)은 2005년 5월 도로 전신주 공사 도중 우연히 발견된 선사시대 대형동굴(총 길이 3.4㎞)이랍니다. 140m 길이의 용암두루마리를 비롯해 석순, 종유, 폭포 등을 갖추었고 동굴 가운데 호수가 있어 용천(龍泉)이라는 이름을 얻었지요. 발굴 당시 태고적 신비가 그대로 간직된 이곳에서 갖가지 유물이 나와 관심을 모았습니다.

특히 흥미로운 것은 곳곳에 남아 있는 인간의 흔적입니다. 동굴 바닥에는 통일신라시대에 만들어진 토기와 철기들이 널려 있었으며, 동굴 벽면에도 오래전 누군가가 꽂아 놓은 횃불용 목재가 벽면을 타고 흘러내린 석회물을 뒤집어쓴 채 발견되기도 했습니다. 또 길이 1m가량의 멧돼지 뼈 등 각종 동물 뼈가 수습되기도 했답니다.

조사 결과 토기는 제주 지방 화산토로는 제작이 불가능한 7세기 후반부터 9세기까지 사용됐던 ‘도장무늬’ 형태의 통일신라시대 것으로 추정됐습니다. 제주 지역에서는 나오지 않는 홍합과 꼬막 껍데기도 출토돼 이를 근거로 추측하자면 통일신라시대의 육지 사람이 용천동굴에 드나들었다는 겁니다. 그렇다면 어떤 경로로 무슨 이유로 그랬을까요?

조선후기 제주 목사를 지낸 이형상(1653∼1733)이 만든 ‘탐라순력도’에는 김녕사굴에 대한 기록만 있어 용천동굴의 존재를 알지 못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용천동굴이 통일신라시대 한 시점에만 사람들에게 알려졌을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죠. 전남 완도 지역을 중심으로 해상활동을 했던 통일신라인들이 우연히 동굴 내부로 들어간 것이 아닌가 여겨집니다.

동굴에 들어간 사람들은 동물과 해산물 등을 제물로 삼아 의식을 치렀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그러다 자연적 또는 인위적 이유로 동굴이 폐쇄됐다는 게 전문가들의 견해랍니다. 벽면에 남아 있는 ‘火川(화천)’이라는 글자도 의문입니다. 1200년 전 이곳을 드나들던 누군가가 용암이 흘러내린 모습을 보고 ‘불기둥이 지나간 냇가’라고 새겨넣은 것은 아닐지 모르겠습니다.

국립제주박물관(관장 권상열)이 개관 10주년과 용천동굴 세계자연유산 등재 4주년 기념으로 8월 21일까지 기획특별전 ‘용천동굴의 신비’를 연다고 합니다. 용천동굴에서 발굴된 통일신라시대 고고유적 70여점을 일반에 처음 공개하고, 용천동굴을 비롯한 제주도의 여러 용암동굴 모습을 사진과 영상 자료를 통해 소개한다는군요. 신비한 동굴의 세계를 담은 ‘타임캡슐’이라고나 할까요.

제주도는 2002년 생물권보전지역, 2007년 세계자연유산, 지난해 세계지질공원 등 유네스코 지정 3관왕에 올랐답니다. 세계자연유산인 용천동굴은 용암동굴이면서도 석회동굴에서만 볼 수 있는 탄산염 생성물이 화려하게 장식하고 있어 ‘세계에서 가장 아름답고 독특한 동굴’이라는 평가입니다. 하지만 훼손을 방지하기 위해 개방하지 않은 동굴이어서 전시장에서만 보는 것이 아쉽습니다.

문화과학부 선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