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대화와 민주화 어느쪽에서도 환영받지 못한 ‘서발턴’

입력 2011-06-16 17:58


박정희 시대의 유령들/김원/현실문화

5·16군사정변 30주년을 맞은 올해, 진보와 보수는 박정희 전 대통령에 대한 평가를 놓고 치열하게 다투고 있다. 한쪽은 경제성장의 치적을, 반대편은 인권 탄압을 내세워 공과를 논한다.

김원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학대학원 교수의 시선은 이런 찬반논쟁의 바깥, 전혀 낯선 지점에 머물러있다. 그의 관심은 도시 하층민, 철거민, 이주민, 범죄자, 소년원생 등 박정희 시대를 살았던 ‘서발턴(subaltern·하위주체)’에 가있다. 국가는 근대화의 걸림돌로 치부하고, 민주화 세력은 ‘민중답지 못한’ 주변인으로 배제했던 사람들. 좌우 양쪽으로부터 잊혀졌던 이들은 자신을 변호할 언어를 갖지 못한 집단이었다는 점에서 사회적 ‘유령’이다. 책은 서발턴이란 유령을 통해 박정희 시대를 재구성하려는 시도다.

저자는 박정희 시대의 서발턴으로 베트남 파병 병사와 파독 노동자, 기지촌 여성에 주목했다. 베트남 참전 군인을 바라보는 사회적 시선은 이중적이다. ‘경제성장의 밑거름이 된 애국적 용사’라는 공식 서사의 밑바탕에는 전쟁 가해자이자 용병의 이미지가 감춰져 있다. 하지만 칭찬과 비난 어느 쪽에도 ‘그들’의 목소리는 없다. 파독 광부 역시 ‘가난한 시절 돈 벌러 간 사람들’이라는 전형 속에 갇혀있다. 김 교수는 “이들이 전장과 갱도 속에서 느꼈던 공포, 귀국 후 고엽제 피해자라는 사실을 숨기고 살아갈 수밖에 없던 고통 그리고 이국땅에서 방랑했던 역사는 삭제됐다”고 말했다.

서발턴이 주체로 등장하는 사건들도 역사는 대부분 잊거나 왜곡했다. 1971년 광주대단지 시위와 77년 ‘무등산 타잔’ 사건이 대표적이다. 광주대단지(경기도)는 재개발계획에 따라 서울에서 집단 이주한 철거민들이 거주하던 일종의 난민촌. 처참한 주거환경에 분노한 빈민들의 생존권 투쟁은 곧 폭력 방화 투석전으로 번졌다. 당시 언론이 난동으로 기록한 이 사건에 대해 저자는 ‘공통경험과 집단기억에 기반을 둔 의사표현이자 도시 봉기’라고 평가했다.

무등산 타잔 사건은 살인사건이 무당촌 폭도들의 집단범죄로 왜곡된 경우다. 청년 박흥숙은 집을 불태우는 철거반원 4명을 망치로 살해한 뒤 자수한다. 무리한 재개발 과정에서 벌어진 우발범행은 무당들이 모여 사는 빈민촌에서 벌어진 집단범죄로 윤색된 채 유통됐다. 저자는 무속에 대한 의구심과 70년대 신흥종교에 대한 경계심리를 원인으로 지목했다.

이영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