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세청 “스위스 비밀계좌 은닉 1조원 국내 증시 투자 정황 첫 적발”

입력 2011-06-15 21:57

스위스 비밀 계좌에 예치된 것으로 보이는 최대 1조원가량의 음성 자금이 국내 주식시장에 유입된 사실이 밝혀졌다. 해외로 불법 반출된 탈세자금으로 추정된 돈이 한국 주식에 투자됐다가 적발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올 초 스위스 국세청은 복수의 제삼국인이 스위스 내 계좌를 통해 한국 주식에 투자한 뒤 배당으로 받은 수익의 5%(58억원)를 배당세로 걷어 우리나라에 지급했다고 국세청이 15일 밝혔다.

스위스 세법상 스위스 거주자가 한국 주식에 투자하면 배당금의 15%를 배당세액으로 원천징수하지만 제삼국 거주자는 20% 세율을 적용받는다. 스위스 국세청은 배당세액을 검증하는 과정에서 스위스 거주자가 아닌 제삼국 거주자가 있는 것을 확인하고 20%와 15%의 차익인 5%를 추가로 걷어 우리 국세청에 지급했다. 이번 환급액은 5∼6년간 배당금의 5%에 해당하는 것으로 볼 때 수천억원에서 최대 1조원에 해당하는 불법 자금이 국내에서 스위스 계좌로 흘러갔다가 다시 우리 주식시장에 재투자된 것으로 국세청은 보고 있다.

국세청 관계자는 “제삼국인이 우리나라와 조세 조약을 체결하지 않은 다른 나라 사람일 수도 있지만 상당수는 한국인으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국세청은 당초 이 자금의 출처를 알기 위해 계좌 내역을 요구했으나 스위스 국세청이 금융비밀주의를 고수하며 거절한 것으로 전해졌다.

국세청 관계자는 “제삼국 거주자로 위장한 한국인들이 수천억원의 자금을 스위스 계좌를 통해 투자했을 가능성도 있으나 현재로서는 그 계좌 내역을 확인할 수 없다”면서 “기업가 등 고액 자산가들의 재산 일부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기획재정부와 국세청 등 세정 당국은 국회에 계류 중인 한·스위스 조세개정안이 통과될 경우 올해 말이나 내년 초에 이번 자금을 포함한 스위스 개설 계좌 내역을 파악할 계획이다. 한국과 스위스 세정 당국은 지난해 말 은밀한 자금으로 의심되는 계좌 명세 및 금융거래 내역 등의 정보를 교환할 수 있는 조세정보교환 규정을 신설한 한·스위스 조세조약 개정에 합의했다.

고세욱 기자 swkoh@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