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골탑’서 ‘반값 등록금’까지… 20년 쌓인 불만 활활
입력 2011-06-14 17:28
등록금 ‘1000만원 시대’는 어느 날 갑자기 찾아온 게 아니다. 등록금 때문에 소를 팔았다던 ‘우골탑’ 시절부터 ‘반값 등록금’까지 뜨거운 교육현안이자 민생현안이었다. 1990년대 이후 대학가에선 등록금 인상 반대 집회가 이어졌고, 등록금 부담에 목숨을 끊는 학생들이 나타났다. 대학들은 아랑곳하지 않고 등록금을 인상했고 정부는 오락가락 갈피를 잡지 못했다.
◇등록금 1000만원, 20년간 만들어진 ‘괴물’=교육전문가들은 대학자율화 조치가 내려진 89년을 등록금 인상의 원년으로 보고 있다. 사립대 등록금은 80년대 초반까지 연간 100만원을 밑돌았다. 사립대 등록금은 문교부(현 교육과학기술부)가 경제기획원과 협의해 인상률을 정하고 대학은 이에 맞춰 등록금 액수를 정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89년을 기점으로 등록금이 급등했다. 한국대학연구소 이수연 연구원은 14일 “89년을 기점으로 20년 가까이 차곡차곡 문제가 쌓이면서 연 1000만원이라는 기형적인 등록금이 됐다”며 “20년간 누적된 학생과 학부모의 불만이 드디어 터졌다”고 말했다.
자율화 이후 등록금은 하늘 무서운 줄 모르고 치솟았다. 82년 이후 등록금 인상률은 평균 2∼4% 였으나 90년 12.7% 오른 것을 시작으로 91년 15.5%, 92년 15.5%, 93년 16.2%, 94년 13.5%, 95년 13.7%, 96년 13.7% 등 7년 연속 10% 이상 인상됐다. 지금은 대학별로 등록금심의위원회에 학생 참여가 보장돼 있고 ‘등록금상한제’로 직전 3개년도 물가상승률의 1.5배 이상을 인상하지 못하도록 하고 있지만 당시엔 그런 기준조차 적용되지 않았다.
대학생들의 반발도 지금 못지않게 거셌다. 90년엔 성균관대, 한양대, 한국외대 등에서 등록금 인상 반대 집회, 본부 점거 농성, 수업 거부 등이 벌어졌다. 96년에는 서울지역 14개 대학이 등록금 인상에 반대하며 이틀간 동맹휴업과 가두행진을 벌였다. 연간 등록금이 300만원 수준이었던 90년대에도 등록금 때문에 비관자살하거나 등록금을 마련하기 위해 절도를 저지르는 사건도 빈번했다.
◇자율화 이후 정부 “인상자제” 호소만=89년 자율화 이후 정부 정책은 경제 상황에 따라 인상 자제를 호소하는 방식을 반복했다. 90년대 등록금 폭등에 놀란 정부는 96년 대학 등록금 인상폭을 한자리수 이내로 강력히 억제하겠다고 밝혔다. 2008년 금융 위기 이후에도 등록금 동결을 요청했다. 올해도 정부의 물가통제 기조 아래 이주호 교과부 장관은 대학 총장들을 만나 등록금 동결을 요구했다. 새로운 사회 연구원 이은경 연구원은 “정부는 일관된 대학 자율화 원칙을 유지하다가 경제가 나빠지면 대학에 등록금 억제를 호소했다”며 “대학에 자율을 주면서 실질적인 등록금 규제 방안이 사라졌다”고 지적했다.
대학들은 정부 기조에 호응하는 시늉을 했지만 금세 또 인상했다. 대학들은 97년부터 등록금을 5% 수준으로만 인상했고 국제통화기금(IMF) 관리 시절엔 2∼3년간 동결하기도 했다.
그러나 대학들은 2000년 이후로 다시 10%까지 등록금을 올렸다. 2000년 최고 578만원이었던 사립대 등록금은 2005년 799만원까지 뛰었다. 이후 2009년 최고 1004만원, 지난해 1243만원까지 급등했다.
전문가들은 반복된 등록금 문제 해결책으로 고등교육에 대한 정부의 적극적 개입을 들고 있다. 재정 투자를 한 만큼 관리 감독을 엄격히 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수연 연구원은 “등록금은 대학의 자율 문제 이전에 국민들의 교육권 문제에서 접근해야 한다”며 “일시적인 재정지원이 아니라 등록금 책정에 대한 정부 권한을 강화할 수 있는 법적 규정을 마련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은경 연구원도 “국가의 고등교육 재정 지원을 우선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까지 올리는 한편 정부의 대학 관리·감독도 강화해야 한다”며 “등록금 결정 과정을 투명하게 공개하고 불합리한 등록금 책정에 대해선 대학에 강력한 페널티를 줘야 한다”고 말했다.
임성수 임세정 기자 joyls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