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출판] 일상의 담백함은 모든 맛의 뿌리 ‘나’ 들여다보는 순례자가 되자
입력 2011-06-14 17:42
일상순례자/김기석/웅진뜰
많은 사람이 순례의 길을 떠난다. 그들이 길을 떠나는 이유는 이국적인 풍경을 만나기 위해서라기보다 일상을 벗어난 자리에서 자기를 돌아보기 위해서다. 그러나 나를 들여다본 후 아무리 멀리 떨어진 곳에 가더라도 결국 일상의 자리로 돌아오게 된다.
목회자이자 문학평론가인 저자는 ‘일상순례자’에서 ‘밖’에서만 구하려하는 삶의 의미와 변화를 ‘안’에서 구하도록 우리들의 생각과 마음을 깨우쳐 준다. 저자는 다른 시각, 다른 장소가 아닌 지금의 일상을 정성껏 살아내는 것이야말로 최고의 순례라는 사실을 책을 통해 증명해 낸다.
저자는 멀리 떠나려고 애쓰기보다 일상의 매 순간을 깊은 통찰 속에서 살아내라고 격려한다. 잠을 잘 때는 깊이 자고, 밥을 먹을 때는 고마움으로 먹고, 일할 때는 정성껏 하고, 누군가와 만나 이야기를 나눌 때는 공들여 경청하고, 놀 때는 신명나게 놀아야 삶은 제 모습을 회복할 수 있다고 말한다.
또 저자는 일상의 자리에서 끊임없이 자기를 반성하고 세상과 소통하고 세상을 사랑으로 돌볼 수 있는 마음을 훈련하는 것이야말로 멀리 떠나지 않고도 우리 삶을 의미와 변화로 채울 수 있는 방법이라고 말한다. 삶이 이루어져야 할 마당은 적막한 산기슭이 아니라 온갖 소음으로 진동하는 일상이기 때문이다.
“일상은 조금도 특별할 것 없는 삶의 순간이요 자리다. 깨고 먹고 입고 일하고 사랑하고 때로는 다투는 것. 삶은 일상의 점철이다. 바다에 사는 물고기가 바다를 모르듯, 일상은 우리가 거의 의식하지 않고 사는 바다와 같다. 하지만 물고기가 바다를 떠나 살 수 없듯, 소소한 일상을 떠난 삶은 상상할 수 없다.”
간혹 일상은 우리 어깨에 나 있던 날개를 자르는 가위처럼, 우리 삶에서 빛을 앗아가는 어둠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먹고 입고 일하고 사랑하고 때로는 다투는 것. 이런 담담함의 일상은 설레지도 주목받지도 못해 때로는 늪이 되어 앞으로 나아가려는 우리의 발목을 잡기도 한다. 그러나 소소한 일상을 떠난 삶을 상상할 수 없다. 일상은 조금도 특별할 것이 없는 삶의 순간이다. 삶으로 번역되지 않은 신앙 고백은 공허한 울림에 지나지 않는다. 실천적인 삶과 영성을 강조하는 저자는 한국 기독교의 문제 가운데 하나가 행동하는 지성의 결핍이라고 지적한다.
“우리가 신앙적 주체로 바로 서지 못하는 것은 믿음과 성찰을 떼어놓았기 때문일 것이다. 기독교인 하면 생각하는 단어가 편협함이라는 사실을 알고는 참담하고 부끄러웠다.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할 것이다’고 하신 분을 따르는 이들이 이런 말을 듣는 것은 세상이 무지하기 때문일까. 그렇지 않다. 편견이라는 대롱으로 세상을 보는 한 우리는 지금의 위기를 극복할 수 없을 것이다. 진정한 회개는 울부짖는 게 아니라 일상의 초점을 바로잡는 일이다.”
저자의 실천적인 영성은 교회와 세상에까지 영역을 넓혀간다. 그는 매주 토요일 청년들과 독서모임을 하며 인문학과 신앙 그리고 삶을 연결하는 법을 찾도록 돕는다. 생태와 환경을 살리는 일에도 앞장서는 그는 그가 담임하는 청파교회 옥상에 햇빛발전소를 세웠다. 이 작은 발전소가 줄이는 이산화탄소량은 30년 된 아름드리나무 200그루와 맞먹는다.
한편 저자는 성경 속에서 사람이 가야 할 길을 발견하고, 고전과 문학의 숲을 헤매며 삶에 정성스레 밑줄을 긋는 방법을 찾아낸다. 그는 들꽃과 손바닥만한 구름 속에서 인생의 섭리를 찾아내 사람들에게 설교로, 글로, 삶으로 들려준다. 책은 나를 들여다보는 일상의 순례자가 되어 볼 것을 권한다.
이지현 기자 jeeh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