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조합법 점검] ‘노조법 재개정’ 추진을 바라보는 3가지 시선
입력 2011-06-12 18:20
① 한국노총 ‘입맛’ 겨냥한 한나라당 개정안
노조법 재개정 논의에 불을 지핀 한나라당 개정안은 다분히 한국노총의 표심을 의식하면서 노동계의 공조를 깨뜨리려 했다는 지적이 많다. 법안을 대표발의한 김성태 의원은 한국노총 상임부위원장 출신이다. 개정안의 골자는 복수노조를 허용한 현행법 조항을 폐지하고 상급단체 파견 노조 전임자를 타임오프제 적용대상에 포함시키는 것이다. 지난 1월 이용득 위원장이 정책연대 파기를 공약으로 내걸고 당선되자 내년 총선을 앞둔 한나라당의 ‘표심 계산기’가 바쁘게 돌아간 결과다.
이는 한국노총의 정세 분석과 맥락이 같다. 한국노총은 지난 5월 펴낸 내부 자료를 통해 “전임자들이 줄어들면 복수노조 시대 한국노총의 경쟁력 약화와 대규모 조직 이탈이 예상된다”고 밝혔다.
한국노총은 “투쟁력을 갖춘 (민주노총 소속) 대규모 사업장 노조는 사용자에게 (무급 전임자 임금의) 우회지급을 강제함으로써 타임오프제를 무력화시키고 있지만, 온건합리적 성향의 투쟁력이 약한 한국노총의 대규모 사업장 노조는 타임오프제로 전임자 수가 현격히 감소하게 된다”고 분석했다.
한국노총 소속 LG전자 노조는 타임오프제 적용으로 전임자 수가 줄자 상급단체에 내는 의무금을 50% 축소해 무급 전임자를 확보했다. 이처럼 개별기업이 의무금을 축소하면 상급단체인 연맹과 한국노총의 활동력 약화를 초래하게 된다는 전망이다. 한국노총 관계자는 12일 “복수노조의 시행으로 안정적 노사관계를 유지하던 사업장에 강성노조 세력이 침투해 강성노조가 등장할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공식적으로 한국노총은 민주노총, 야4당과 노조법 재개정에 공조하고 있다. 한국노총의 요구안은 타임오프제 폐지와 복수노조 교섭창구단일화 폐지로 이뤄져 있다. 한국노총이 복수노조 허용금지를 담은 한나라당 개정안에 찬성할 경우 민주노총, 야4당과의 공조를 깨뜨리는 부담을 감수해야 한다.
② 노조 세력 극대화, 야4당+노동계 개정안
민주당 홍영표 의원이 대표발의하고 민주당, 민주노동당, 진보신당, 국민참여당 의원 81명이 서명한 개정안은 타임오프제 폐지와 복수노조 교섭창구 단일화 폐지가 주요 내용이다.
노동계는 현행법이 규정한 타임오프제가 노사자율원칙을 해치고, 복수노조 교섭창구 단일화는 쟁의행위 돌입을 어렵게 해 단체행동권을 제약한다는 입장이다. 복수노조 허용에 대해 민주노총은 “사업장 단위 복수노조 허용은 노동자의 단결권과 단결 선택의 자유를 확대·강화한다는 의미에서 반길 일”이라고 평가했지만 “소수노조의 교섭권과 파업권을 근본적으로 가로막고, 다수노조라 하더라도 이전과 같은 노동3권 행사를 불가능하게 만드는 교섭창구 단일화는 반드시 폐지돼야 한다”고 밝혔다.
시행예정 법은 교섭대표권을 교섭 참가를 신청한 전체 조합원의 과반수를 차지하는 노조가 갖도록 규정하고 있다. 민주노총은 신설 노조는 과반수를 점하지 못하면 단체교섭권을 사실상 행사할 수 없고, 쟁의행위 돌입 요건을 공동교섭 참가 전체 조합원의 과반수로 규정해 단체행동권을 제약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교섭창구 단일화 방안은 타임오프제와 함께 노사관계의 파탄을 유발하고 노조 파괴를 이끌어내기 위한 정부와 재계의 합작품이라는 시각이다.
타임오프제에 대해선 “노조 전임자의 임금 지급 여부는 노사 간에 자율적으로 정할 사항이지 국가가 법으로 금지할 문제가 아니다”라며 폐지를 요구하고 있다.
③ 재개정은 없다, 정부·재계 입장
고용노동부는 노조법 재개정은 없다는 입장이다. 복수노조 설립으로 근로자의 노조 선택 자유가 보장되고 노조 간 경쟁관계가 조성돼 노동운동이 더욱 발전할 것이라는 설명이다. 고용부 관계자는 “개정 노조법은 13년 동안 어려운 과정을 거쳐서 이뤄진 것이며, 이해당사자 모두의 의견 개진을 통해 만들어졌다”고 말했다. 실제로 이번에 시행될 노조법의 토대는 1997년 노사정 대타협을 통해 만들어졌다. 법안은 만들어졌지만 시행은 번번이 유보됐고 결국 지난해 초 한나라당의 단독 처리로 현행법이 만들어지면서 유보 시한을 다음 달로 정한 것이다.
이 관계자는 “노조법 재개정 주장은 현재 노동운동을 하고 있는 기득권 세력을 보장하면서, 편하게 노동운동을 하겠다는 것과 같다”고 비판했다.
교섭창구 단일화가 헌법상 노동권을 침해한다는 지적에 대해서는 “주요 국가의 국제적 관행을 참고해 정했고 여러 제도적 보완책을 만들어놨기 때문에 위헌이라고 판단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또 소수노조의 교섭권 보호 장치에 대해선 “직접 교섭을 하지 못하더라도 교섭대표노조가 공정성을 저버렸다면 노동위원회에 구제신청을 하도록 했다”고 설명했다.
재계도 노조법 재개정에 일제히 반대 의사를 나타냈다. 대한상의는 “노조법 재개정안은 우리 경제의 발목을 잡고 있는 후진적 노사관계를 방치하는 것이며 현 정부의 노동개혁을 무효화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선정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