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리·분만의 공통점은… 관심과 사랑, 그리고 기다림의 미학이죠

입력 2011-06-10 17:53


요리하는 산부인과 의사 황인철씨, 임산부를 위해 요리 강의하다

“떡볶이 떡에 살짝 소금을 뿌려야 겉돌지 않고 맛있습니다.”

7일 서울 광화문 라퀴진에서 임신출산을 위한 여성위생용품 브랜드 ‘자연생각’ 주최로 ‘건강한 엄마되기 프로젝트’ 쿠킹클래스가 열렸다. 산모 및 예비 산모 20명에게 레시피에 나오지 않은 비법을 설명해주고 있는 요리 강사는 아담한 체구의 남성이었다. 요리하는 남자가 뭐 한둘인가? 물론 유명 셰프는 대부분 남자다. 요리하는 남자는 참 많다. 하지만 이날 남자요리 강사는 이력이 특이하다. 그가 건네준 명함에는 ‘순천향대구미병원 산부인과 황인철 교수’라고 적혀 있다. 그는 포털 사이트 다음에서 ‘아기 받는 남자의 아주 특별한 레시피’라는 블로그를 운영하고 있다. 다음이 베스트 뷰 블로거에게 주는 ‘황금펜’상을 지난달말 받을 만큼 인기 블로그다.

“황금펜을 받은 479번째 블로거라네요. 얼굴도 뵌 적이 없는 인터넷상의 손님들이 제 따뜻한 요리와 이야기를 반겨주시니 감사할 뿐이죠.”

2009년 7월 16일 첫 글을 올린 그는 블로그를 시작한 이유를 ‘요리와 사람을 좋아해서’라고 했다. 그는 ‘표현이 너무 서툴러서 속상할 때가 많다’고 했지만 그의 블로그는 인기 폭발이다. 하루 평균 1500여명이 다녀가고, 그의 포스팅을 정기구독하는 누리꾼이 1000여명이나 된다. 또 글이 올라갈 때마다 댓글이 주르륵 달린다. ‘늘 맛있는 음식과 정이 배인 일상의 진솔한 이야기가 담긴 글에 감동 받고 갑니다’ ‘이 블럭 오면 행복합니다’ 등등.

“요리와 분만은 관심과 사랑, 기다림의 미학으로 완성되는 것이지요.”

‘의사가 왠 요리?’ 이런 질문을 많이 받았다는 그는 아기 받는 일과 요리의 공통점부터 얘기했다. 그는 산부인과 의사가 산모 상태를 살피면서 태아가 나올 때까지 기다리며 도와주듯 찌개를 끓일 때도 80%만 간을 맞추고 나머지는 약불에서 서서히 조려야 한다며 ‘하하’ 웃었다.

그는 요리에 관한한 조숙했다. 여섯 살 때 요리에 눈을 떴단다. ‘부엌에는 절대 들어가지 않는다’는 원칙을 고수한 황 교수의 아버지 덕분이라고.

“어머니가 어디 가셨는데 배가 고파 견딜 수가 없었어요. 그래서 쇠고기를 굽고, 기름소금장을 만들어 상을 차렸지요.”

아버지는 맛있게 드셨지만 맛이 좀 이상해서 보니 소금 대신 화학조미료를 넣었더란다. 그때 맛보다는 아들의 정성을 높이 산 아버지를 보면서 요리에 관심을 갖게 됐다는 그가 본격적으로 요리를 한 것은 아내가 둘째를 임신하면서부터. 학창시절과 인턴, 레지던트 때는 요리에 한눈 팔 시간이 별로 없었던 것.

“교수가 되니 시간을 낼 수가 있더라고요. 마침 입덧도 끝난 아내를 위해 앞치마를 둘렀지요.”

황 교수는 요리는 관심이라며 관심을 갖고 하다보면 늘게 마련이라고 했다. 요리 못하는 사람들은 그의 말에 동의하기 어려울 듯하다. 기자도 그 중 한 사람. 타고난 손맛이 있는 것 같다고 하자 그는 “실은 어머니가 요리를 매우 잘 하신다”면서 얼마 전 모자지간에 ‘요리 배틀’을 통해 어머님께도 실력을 인정받았다고 자랑한다. 황 교수가 꽃게장을 담그자 그 다음날 어머니도 꽃게장을 담가 식탁에 내놓더라는 것. 그리고는 “네 것이 더 맛있으니 한데 섞어라”고 했다고.

흔히 말하는 ‘사’자 남편이 요리까지 해주니 그의 아내는 얼마나 행복할까? 서울나들이에 따라나선 황 교수의 아내 김연정(41·경북 구미시 삼모동)씨가 손사래를 쳤다. 김씨는 “좋기도 하지만 피곤하기도 하다”고 했다. 사람과 요리 좋아하는 황 교수는 수시로 손님을 초대해 한상 떡 벌어지게 차리는데, 그 설거지가 모두 김씨 몫이라는 것. 아내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반격에 나선 황 교수. “에잇, 자기 친구들 올 때도 요리해주잖아.” 옆에 앉아있던 황 교수의 아들 준석(6)이도 거든다. “엄마보다 아빠가 만든 게 더 맛있어요. 우리 아빠가 만든 스파게티 짱이에요.”

황 교수는 “블로그 이야기를 예쁜 책으로 만들기 위해 준비 중”이라면서 아마도 레시피보다는 따뜻한 이야기가 담길 것이라고 했다. 아이 받는 일과 요리, 두 가지 모두 사랑한다는 황 교수는 블로그에 요리와 함께 산모들의 건강칼럼도 올리고 있다.

김혜림 선임기자 ms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