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 배구 국가대표 감독된 박기원씨… 이란 배구계 히딩크 “한국 배구 구할 것”
입력 2011-04-21 18:02
그는 이란 배구계의 ‘히딩크’였다. 배구 불모지인 이란 배구대표팀을 맡아 3개월 만에 출전한 2002년 부산아시안게임에서 아무도 예상 못한 준우승을 차지했다. 세계 최고 수준의 이탈리아 배구계에서 오랜 지도자 생활을 거친 내공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최근 국제대회에서 부진을 면치 못하던 한국 배구가 그에게 손을 내밀었다. 대한배구협회는 내년 런던올림픽까지 남자대표팀을 이끌 새 사령탑에 박기원(60·사진) 전 LIG손해보험 감독을 선임, 21일 발표했다. 박 감독으로서는 지난해 성적 부진으로 LIG손보에서 중도하차했던 불명예를 씻을 찬스다.
“방콕아시안게임 대표선수로 뛰던 1978년 이후 지도자로서 33년 만에 태극마크를 달게 돼 감개무량합니다. 20년 이상 이탈리아 무대에서 축적한 경험을 살려 한국 배구에 보탬이 되도록 하겠습니다.”
한국 남자배구는 국내 프로리그의 흥행 성공과 반대로 최근 두 차례 올림픽에서 출전권조차 따내지 못하는 등 국제무대 성적은 신통찮다. 한국 배구가 처음 전임감독제까지 도입해가며 박 감독을 사령탑에 앉힌 것은 바로 그 때문이다. 그는 1972년 뮌헨과 76년 몬트리올 올림픽에 대표선수로 출전했고 78년 로마세계선수권대회에서는 남자배구 역대 최고 성적인 4위를 견인한 주역이었다.
“우선 내년 5월로 예상되는 런던올림픽 예선전 통과가 당면 과제입니다. 올해 월드리그에서 지난해 참패를 만회하면서 선수들의 기량을 끌어올려야겠지요.”
한국 배구의 ‘구원투수’ 역할을 하게 된 그가 내놓을 비장의 카드는 뭘까. 그가 밝힌 일성은 ‘빠른 배구’였다.
“신체적으로 열세에 있는 한국 배구가 살 길은 스피드입니다. 한 박자 빠른 토스로 키 큰 상대 블로커를 따돌려야 배구강국을 이길 수 있습니다.”
하지만 느린 토스에 길들여진 국내 배구 스타일이 대표팀이라 해도 하루아침에 바뀔 수는 없는 노릇. 어쨌든 문성민(현대캐피탈) 박철우(삼성화재) 김학민(대한항공) 등이 총망라된 대표 상비군 25명 가운데 정예 멤버를 뽑아 당장 내달 말부터 시작되는 월드리그를 준비해야 한다. 우리보다 실력이 한참 앞서는 이탈리아 쿠바 프랑스가 같은 조에 편성돼 고전이 예상된다.
“국내 프로리그를 치르느라 부상선수가 많아 걱정입니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남자배구에 한 획을 그을 수 있는 대표팀을 만들어 보겠습니다.”
79년 한국 선수로는 처음 이탈리아에 진출할 때 느꼈던 설렘으로, 그는 적지 않은 나이에 감독으로서 국제 배구계를 향해 출사표를 던졌다.
서완석 부국장기자 wssuh@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