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사초롱-이건용] ‘살처분’

입력 2011-02-21 20:01


“사람들도 동물들의 신음 소리만 남은 지구에서 오래 살지는 못할 것이다”

사람들이 이래도 되나 하는 생각이 드는 요즈음이다. 구제역과 AI의 만연으로 인해 가축을 ‘살처분’하는 장면을, 그 장면 중의 극히 일부를, TV화면으로 보면서이다. 인터넷에 올라온 글을 보면 더욱 끔찍한 얘기들도 있다. 얼마나 무서운 체험이었으면 이 일에 참여했던 이들 중에는 정신과치료를 필요로 하는 경우까지 있다고 한다. 그 일과는 멀리 떨어져 있는 나도 일종의 죄책감을 느낄 정도이다. 그런데 언론보도를 보면 가축들을 대량으로 생매장하는 우리 인간의 잔인성에 대한 얘기는 별로 없고 부실한 처리 때문에 생기는 식수 오염, 패혈증 등의 비위생적인 환경, 그리고 우유 부족 사태 같은 인간과 관련된 문제에 대한 언급만 많다.

‘살처분’은 이번에 처음 있는 일이 아니다. 몇 년 전에도 보도에서 본 적이 있다. 처음 그 말을 들었을 때 섬뜩했던 느낌도 기억이 난다. 당시에는 그 처분이 성공적이었던지 관련보도가 더 나오지 않았다. 이번에는 그렇지 못해서 병이 크게 번졌고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이 말을 겨울 내내 들은 것이리라. 워낙 구제역이 무서운 전염병이어서 발생한 지역의 가축을 모두 발병 여부와 관계없이 땅에 묻어버리는 것이 아직 청정한 지역을 보호하는 불가피한 조치일 것이다. 자신이 키우던 소와 돼지를 묻는 사람들의 심정은 또 얼마나 괴로웠을 것인가.

그러나 어떻게 생각해도 마음이 편안하지 않다. 소를 키우는 것도, 소를 묻어 버리는 것도, 소에게 주사를 맞히는 것도 모두 사람의, 사람에 의한, 사람을 위한 조치일 뿐 소의 입장에서 나온 것은 아무 것도 없다. 하기야 소는 입장이란 게 없다. 있다 하더라도 사람은 모른다. 모르니 사람이 생각하는 대로 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 살풍경은 곧 사람의 풍경이다. 이 풍경이 그대로 지나쳐지지 않는 것은 이 때문이다. 이 속에서 보이는 것은 인간의 이기심, 모든 것을 자신의 이익과 관련해서 판단하는 냉혹한 이기심이다. 가축들을 비좁은 공간에 가두어 놓고 인간의 먹이로 키우는 데만 골몰하기 때문에 전염병에 취약하다는 지적도 있다.

유전공학 쪽에서는 인간에게 장기를 제공해 줄 수 있는 돼지나, 인간이 필요로 하는 부분을 더욱 많이 제공해 줄 수 있는 가축들에 대한 연구를 계속하고 있다. 생명윤리를 둘러싼 논쟁이 있지만 과학자들은 사람의 줄기세포에 대한 연구도 계속한다. 이 연구가 계속되면 어디까지 갈 것인지 모르는 채, 혹은 애써 알려고 하지 않는 채, 연구자들은 지적인 욕구에서, 그들을 뒷받침하는 자본은 이익창출의 욕구에서 앞을 향하여 경쟁적으로 달려간다.

다른 한편에서 생물 종은 하루에도 수백 종이 소멸한다. 20∼30년 내에 지구 전체 생물종의 25%가 멸종할 것으로 보는 전망도 있다. 나비가 수천 종에서 수백 종으로 줄어든다고 해도 인간의 이익 측면에서 보면 문제 될 것이 없다. 한반도에 흔하던 호랑이가 멸종했지만 우리는 까딱없지 않은가.

이 끝 간 데 없는 이기심을 가로막는 벽이 하나 있기는 하다. 지구다. 인간의 이기심을 모두 충족시키기에 지구라는 별은 너무 작고 연약하다. 이 별이 옛날에는 크기도 했고 위대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제 인간의 손바닥 위에 있다. 게다가 이미 앓고 있다. 온난화에, 이상기후에, 사막화에, 인간이 보살펴 주지 않으면 안 되는 지경이다. 이제 위대한 인간은 이미 우주를 바라보고 있다. 지구가 못 살 지경이 되면 버리고 떠날 생각인가.



인간이 지구를 보살필 만큼 위대해졌으니 이제 지구의 모습은 곧 인간의 모습이다. 그리고 지구란 우주 속에서 유일하게 온갖 생명들에 의하여 채워진 별이다. 어떻게 이 지구를 가꿀 것인가? 제각기 자신의 방식으로 살아가기 위하여 분주한 생명들의 노래가 들리게 할 것인가? 인간에 의하여 학대받는 생명들의 신음소리가 들리게 할 것인가? 인터넷에서 읽은 한 ‘살처분’ 참여자의 말이다. “자동차의 급브레이크 소리를 들으면 깜짝 놀라곤 합니다. 그 소리가 돼지들의 비명소리와 너무나 흡사하거든요.” 인간도 이러한 신음소리만 남은 지구에서는 살지 못할 것이다.

이건용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