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문일] 제5세대 전쟁
입력 2011-02-17 18:30
군사 전문가들은 근대 이후의 전쟁을 전쟁세대(Generation Warfare)로 분류한다. 1세대는 소총을 든 징집병들이 등장한 나폴레옹전쟁. 2세대는 국가의 자원을 모두 동원해 싸우는 총력전으로 포병 화력이 전황을 좌우한 남북전쟁과 제1차 세계대전. 3세대는 무기체계의 비약적인 발달로 진지전 대신 기동전이 된 제2차 세계대전.
1989년 미 해병대 전문지(Marine Corps Gazette)에 제4세대 전쟁 개념이 등장했다. 영토와 자원을 둘러싼 충돌이라기보다 이념의 충돌이며 재래 병력이 아니라 비정규 전사들에 의해 수행되는 전쟁이다. 지금 미군이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에서 알카에다 탈레반 등과 벌이고 있는 전쟁이 좋은 예다. 이른바 비대칭전(非對稱戰).
2009년 MCG에 제5세대 전쟁 개념이 소개됐다. 불만에 가득 찬 세계 도처의 사람들이 4세대 전사들이 개척한 전술과 무기를 이용해 자신들의 절망을 가장 효과적으로 나타낼 수 있는 상징적인 목표를 공격한다는 내용이다. 5세대는 3세대의 정규 군대도, 4세대의 이념도 없다. 있는 것은 무질서와 폭력의 혼돈뿐.
5세대 전사들은 정치적 교착 상태가 곧 승리다. 이들은 지지 않는 것을 이긴 걸로 여기지만 이들과 싸우는 정규군은 이기지 못하면 곧 패배다. 기본적으로 공간적·양적 투쟁인 전쟁의 성격이 5세대에 와서는 이들과 맞서는 국가의 지구력 테스트로 바뀐다. 전쟁의 승패는 사회가 얼마나 오랫동안 희생을 감내하느냐에 따라 결정되는 것이다.
미군은 3세대 전쟁인 베트남전에서 이미 5세대 전쟁의 원형을 맛보았고 패배했다. 실패한 국가, 군벌과 해적의 나라가 된 소말리아를 비롯해 많은 아프리카 국가에서 벌어지고 있는 내전의 소용돌이는 5세대 전쟁의 범주에 포함된다.
올해 키리졸브 한·미 연합훈련은 북한과의 전면전 상황뿐 아니라 급변 사태에 대비한 훈련도 포함된다고 한다. 여기에는 김정일 사후 쿠데타가 일어나거나 단위 부대들이 주둔 지역에 할거해 상호 대항하는 시나리오도 상정돼 있다.
이념을 상실한 잔병(殘兵)들을 대하는 방법은 무엇일까. 5세대 전쟁의 분석가들은 우선 이들과 싸우지 말아야 한다고 말한다. M-16 자동소총과 에이브럼스 전차를 앞세울 게 아니라 인도적 지원과 커뮤니케이션에 주력해야 한다는 것이다. “4세대 무기에 2세대 사고방식”(이상우 전 국방선진화추진위원장)을 가진 우리 군에게 벅찬 과제가 하나 더 늘어날 것인가.
문일 논설위원 norwa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