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석도 지용도 엊그제같은 한평생… 한국시단 원로 김규동 시전집 출간

입력 2011-02-16 19:30


한국시단의 원로 김규동(87·사진) 시인은 와병 중이다. 급성 폐렴에 노환이 겹쳐 서울 대치동 자택에서 몸져누운 지 9개월째다. 부인이 곁에서 간병하고 있지만 연락을 해도 전화를 받지 않는다. 늘 정갈한 나무 같았던 그는 세상의 안부를 사양하고 혼자만의 시간을 갖고 싶었던 것이다. 그의 육성은 최근 출간된 ‘김규동 시전집’(창비)에서 겨우 얻어들을 수 있을 뿐이다.

“이만 데려가주었으면 싶지만 그렇지가 않다. 죽음은 고통이 무엇인지 알아야 한다며 시간을 끄는 것 같다. 거동을 못한 지 이제 9개월. 글, 쓸 수가 없다. 가족들이 시전집 이야기를 꺼냈을 때 나는 반대했다. 그것은 사후에나 생각해볼 문제다. 전집이란 대시인, 대작가의 몫이다. 군소 시인에게 그런 책은 당치 않다.”

그는 스스로를 군소 시인으로 낮추고 있지만 그의 존재 자체는 살아 있는 한국현대시사로 통할 만큼 독보적이다. 함북 종성 출신인 그의 회고에 따르면 어수선하던 해방정국인 1948년 서울에서 활동하던 김기림 시인의 근황이 궁금해 내려왔다가 다시는 귀향하지 못했다. 1930년대의 대표적인 모더니스트 김기림은 그의 경성고보 시절의 은사이기도 하다. 하지만 김기림은 그 후 북으로 납치되어 떠나갔고 그는 스승 없는 서울에 혼자 남아야 했다. 1948년 서울에서 발간되던 문예지 ‘예술조선’에 시 ‘강’을 발표하며 등단한 그는 51년 피난지 수도 부산에서 박인환, 김경린, 조향, 이봉래, 김차영 등과 ‘후반기’ 동인을 결성해 활동했다.

전쟁 직후, 이해타산만 챙기는 문단의 상황에 염증을 느껴 10여년간 절필한 이래 그는 1970년대 산업화의 혼란과 부조리에 직면하면서 과감하게 현실 참여로 돌아선다. 시전집은 그가 시력 60여년 동안 펴낸 아홉 권의 시집과 근작시를 집대성한 것이다.

“차를 타고 달렸다 만리를/달렸다는 데/지나지 않는다/살구를 안주로/술을 조금 마셨다/통일을 기다리다 죽은/그 친구 생각이 났다/멀리/강물이 번쩍거렸으나/시간이 흘러간다는 데 지나지 않았다/뇌성마비 앓은 처녀가/히죽 웃었다/우리 고향 자두나무 그늘에서…”(‘고향 가는 길’ 부분)

2005년 8월 평양에서 열린 남북작가대회에 다녀와서 쓴 이 시처럼 그는 창작에 임하는 데 있어서 숙성과 발효를 거치지 않고는 작품을 발표하지 않았다. 아홉 번째 시집 ‘느릅나무에게’(2005) 이후에 간간히 발표한 시에는 정지용, 박태원, 이태준, 김유정, 채만식 같은 북으로 넘어간 선배 문인들의 이름이 유난히 자주 등장한다. 이들 시편들은 작고 시인들의 부음을 거슬러 그들을 오늘에 되살려놓는 부활의 언어를 보여준다. “오늘은 나운규, ‘아리랑’ 찍는 날/은박지 천 리에 깔렸다/귀뚜라미도 울지 않는다/귀뚜라미는 달맞이대회에 갔다/낡은 성벽 위에서/저리도 구슬피/트럼펫 불고 있는 건/김기섭일 것이다/이상은/아까 책 한 권 겨드랑이에 끼고/저쪽 길로 갔다/그의 얼굴이 희었다/스틱 짚고 흑백영화 골목길 걸어서”(‘달밤’ 부분)

그의 뇌리엔 아직도 1930년대의 달이 뜨고 그의 눈동자엔 60년 저편의 세월이 고스란히 서려 있는 것이다.

정철훈 선임기자 chju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