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김남중] 방역은 제2의 국방
입력 2011-01-23 17:01
구제역 감염이 확인되면 반경 500m 이내 가축들을 즉각 살처분하고 매몰해야 한다. 또 최소한 반경 3㎞ 전역을 철통같이 지켜야 한다. 가축과 사람의 이동은 물론 사료나 분뇨 차량도 출입을 막아야 한다.
구제역과의 싸움은 여기서 결판난다. 김성훈 전 농림부 장관은 “구제역 대응은 ‘즉각’과 ‘완벽’이 원칙”이라고 주장한다. 그런데 현실은 어땠을까? 살처분에 동원할 인력부터 부족했다. 시골에 인력이래야 나이 드신 농민들이고, 그마저 몇 명 안 된다. 살처분 후에는 언 땅을 5∼10m 파고, 비닐을 깔고, 석회석을 뿌린 후, 가축을 매몰해야 한다. 사람도 없고 장비도 없는 조건에서 ‘즉각’ 할 수 있는 일이 아닌 것이다.
출입통제도 ‘완벽’과는 한참 거리가 멀었다. 이영순 서울대 수의학과 명예교수는 “현장에서 일하는 제자들(수의사들) 얘기를 들어보면, 밤 12시가 넘으면 차들이 제한 없이 지나다녔다”고 전했다. 농민과 공무원, 경찰에게 통제를 맡겨놓는데, 그 많은 초소들을 24시간 지킨다는 게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더구나 주민들끼리 출입을 눈감아 주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이번 구제역 사태에서 초동 대응에 실패했다는 것은 명백하다. 그러나 초동 대응을 민간에 맡겨놓고, 군사작전에서나 요구될 법한 즉각성과 완벽성을 기대하는 것 자체가 문제일지 모른다. 구제역은 민간에서 상대하기엔 벅찬 상대이기 때문이다.
김 전 장관은 “방역청이 없는 현 상황에서는 군의 협조가 필수적”이라고 말했다. “군대는 인력과 장비를 갖추고 있고, 즉각적이고 무자비하게 구제역과 싸울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집단”이라는 것이다. 이 명예교수 역시 “군이 좀 더 빨리 나섰더라면 확산을 막는 데 큰 도움이 됐을 것”이라고 말했다.
2001년 영국에서 구제역이 났을 때 군이 즉각 투입됐고, 지난해 일본 구제역 사태에서도 지방자치단체 요청으로 자위대가 나섰다. 우리나라에서도 2000년 경기도 파주에서 처음으로 구제역이 발생했을 때부터 군부대가 불려나갔다. 이번에는 군부대 투입이 다소 늦었다. 병사들의 감염이나 정신적 충격을 우려한 부모들의 반대가 굉장히 심하다는 게 국방부 해명이다.
국방부의 이 딜레마를 해결해 주기 위한 사회적 논의가 필요해 보인다. 이 명예교수는 “방역은 제2의 국방이라는 생각이 필요하다”며 “구제역 발생 시 각료회의에서 결정하고 국방장관이 위임을 받아서 군부대를 투입하는 식으로 대응 매뉴얼을 만들어야 한다”고 제안했다.
김남중 차장 njkim@kmib.co.kr